[신문광고와 컬러] 종이와 잉크라는 현실
2011.05.12 03:22 신문광고저널, 조회수:5551










글 ㅣ 이지원 (미 올드도미니언대 그래픽 디자인학과 교수)




유달리 과감하고 시의 적절하게 컬러를 입힌 그래픽을 두고 디자이너들은‘ 색을 잘 쓴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아무리 색에 대한 상징적 이해와 직관적 감각이 뛰어나다 해도 디자이너가 지정한 색을 종이에 발현하는 잉크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제로 색이 좋은 그래픽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왜 교정지하고 색이 다르죠?”

1990년대 중반 이후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육을 받은 세대는 컴퓨터로‘ 인쇄 직전까지의’ 모든 작업을 끝마치는 수준 높은 기술의 수혜자다. 그런데 모든 작업을 컴퓨터 화면 상에서 진행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인쇄물의 크기와 색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덫에 빠지게 마련이다. 인쇄매체의 그래픽을 디자인 함에 있어서 컴퓨터 화면은 어디까지나 프리뷰(preview)에 불과하다.

고도로 발달한 화면 구현 기술도 근본성질이 완전히 다른 ‘화면’과 ‘지면’을 완벽히 일치시킬 수는 없다. 웬만큼 실무경력이 있는 디자이너는 컴퓨터 화면의 기만과 위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잘 알고 있다. 색에 대한 문제는 실제 인쇄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는 모든 색은 가산혼합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어도비 포토샵에서 컬러모드를 감산혼합 모드로(CMYK 모드) 설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감산혼합 결과에 근접한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값비싼 컬러 프린터를 사용해 견본 페이지를 점검한다 해도 실제로 최종인쇄가 이뤄질 곳의 인쇄기를 가져다 쓰지 않는 이상 정확한 색을 보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출력소·인쇄소·디자이너는 ‘교정지’라는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에 색을 맞추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인쇄소에서는 교정지를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색을 맞춤으로써 디자이너가 의도한 색깔에 근접한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출판인쇄 작업에 해당되는 얘기다. 교정지는 오프셋 인쇄에 맞춰진 과정이기 때문에 윤전인쇄 방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일간지나 주간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신문광고 디자인, 신문인쇄 상황 고려해야

신문은 우리가 접하는 인쇄물 중 가장 한시적인 성격을 띠며, 일정 기간 중에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되는 인쇄물이다. 이러한 신문의 성격은 ‘윤전인쇄’와 ‘신문용지’라는 필연적 조건을 낳았다. 따라서 신문에 실릴 광고를 다루는 디자이너는 반드시 신문인쇄만의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월간 잡지의 반들반들한 코팅용지에 실리는 광고와 일간 신문에 실리는 광고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돼야 한다. 디자이너가 섬세한 이미지를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곳은 컴퓨터 화면 뿐이다. 화면 밖 현실은 종이와 잉크로 이뤄진 아날로그의 세계다. 제 아무리 머리가 좋고 감각이 뛰어나며 화려한 컬러감각을 지녔다 한들 재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 디자이너는 좋은 결과를 탄생시킬 수 없다.

신문광고를 만들면서 하얀 종이에 6색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시안을(심지어 출력하지도 않은 PDF 파일을) 광고주에게 시안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클라이언트 컨펌의 기쁨은 잠시, 광고가 나간 후에 광고주가 시안과 실제가 왜 달라 보이느냐는 항의를 한다면 그땐 뭐라 변명할 것인가. 그렇다고 신문인쇄의 재료와 기술 때문에 당신의 창의력이 가로막힌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모순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기술적 제약은 디자이너에게 강력한 표현 동기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사는 기술의 한계를 주어진 조건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쇄와 재료의 기술적 제약이 훌륭한 그래픽을 탄생시킨 요인이 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디자이너들이여, 제안하건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사용하게 될 종이를, 잉크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아라. 그것이 당신이 만들어 낼 멋진 그래픽을 눈앞에 펼쳐줄 인쇄컬러 CMYK 픽을 눈앞에 펼쳐줄 현실의 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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