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내게 다가와 길을 물었다
2009.04.23 12:00 Cheil Worldwide, 2009년 03월, 398호, 조회수:4734

Global 제작본부 김홍탁CD


 그 때 그 거리엔 졸음에 겨운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는지도 보드라운 분홍빛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재잘대며 오가는 인파 속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어느 언더웨어 매장의 대형 현수막. 그 순간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숨이 멈췄고, 미세한 떰림이 밀려왔다. 미디어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변신한 그 인생 최초의 카피가 명동의 오후를 유혹하는 위력적인 장면. 그리고 이 낯선 풍경에 얼어붙은 그에게 광고가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침내 네가 걸어갈 길이 시작되었어."

두려움에서 출발한 광고에 대한 사명감

"기쁨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충격이었어요. 제가 만든 첫 광고가 잡지에 실려 인쇄될 날을 기대했을 뿐, 백주대낮의 길거리 한복판에서 위력적인 모습으로 대면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을 세뇌시킬 수 있는 힘을 광고가 가졌구나,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 때 느낀 두려움이 사명감으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글이 밥이 될 수 있는 직장을 찾다 선택한 광고인의 길 초입. 한 때 꽤나 날리던 글 솜씨를 발휘해 써 내려간 한 줄의 카피, 1990년, 피 끓는 이십 대의 청년이 느꼈던 미디어의 놀라운 위력은 지금까지도 김홍탁 CD의 광고 인생을 관통하는 강렬한 원체험으로 남아 있다. 마케팅의 요소로만 평가되던 광고를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재발견하는 작업(광고비평서<광고, 대중문화의 제 1원소> 저술, 2000), '뻔지르르한 광고에 딴지를 건다'란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의 틀을 깬 광고를 알리고 심의 과정을 통해 버려지는 광고의 예술성에 관해 과감히 문제 제기한(광고전시회 '안티광고전' 기획, 2001)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리고 이 일련의 작업들은 그에게 '국내 제 1호 광고 평론가' '아트갤러리에 최초로 광고를 전시한 기획자'라는 다양한 '최초'의 수식어를 선사하기도 했다.

"무모함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즐겁고, 그래서 여행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편이예요. 사주의 뜻풀이처럼 역마살이 껴 있어 그런가(웃음). 그래서인지어릴 땐 외교관이 되란 소릴 많이 들었어요. 지금의 전, 한국과 한국의 기업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는 셈이니, 어떤 의미에선 '상업적 외교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길 위에서 발견한 이이디어의 씨앗

지난 한 해의 해외 출장만도 열 두번. 이 잦은 비행의 지루한 시간도, 이국땅에서 숨 가쁘게 진행될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늘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에 김홍탁CD는 마냥 설렌다. 그런 그에게 해외 곳곳의 외국인 친구들이 보내온 메일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은 "Where are you now?". 그리고 어쩌면 이 의문형의 문장이 김홍탁 CD를 설명하는 가장 구체적인 키워드인지도 모르겠다.

2000년 삼성전자 제품의 글로벌 광고 개척기를 겪으며, 2004년 본격적으로 출범한 삼성의 글로벌 기업이미지 캠페인을 지금까지 담당해 오며, 그간 그가 보고 듣고 느꼈을 5대양 6대주의 자극들은 때론 따스한 감동으로(삼성기업 광고, 월드와이드,2004년~) 때론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삼성 핸드폰 T100, 월드와이드, 2002년) 때론 강렬한 여운(비 뮤직비디오 'Any Dream'를 통한 브랜디드 언테테인먼트 프로젝트, 중국, 2008년)으로 그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의 이러한 경험들은 제일기획 글로벌광고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2005년C2그룹에서 국내 삼성의 기업 광고를 전담하던 그가 Global 제작본주의 설림과 함께 제 1의 인재로 발탁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무엇보다 2004년 시작된 삼성의 글로벌 기업이미지 광고를 5년이상 CNN, BBC 등의 세계 유수의 채널에 온에어하며, 전세계에 글로벌 삼성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뜻 깊습니다. 특히 글로벌 광고를시리즈 형식의 장기캠페인으로 이어가는 작업은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그렇죠."

숙명처럼 다가온 크리에이티브의 주술

목덜미를 스치며 찰랑이는 머리카락, 짙푸른 안경 속에 감추어진 깊은 눈매, 언제나 진만을 고집하고, 유난히 스니커즈를 사랑하며, 위버섹슈얼의 열풍이 불기 전부터 트레이드마크로 길러온 수염. 이 자유로운 모습처럼 오픈된 마음과 열정의 에너지는 그가 망설임 없이 가장 소중하다 말하는 팀원들과 동료, 그리고 그를 통해 광고인으로 살아갈 꿈을 키워온 아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광고인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광고라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명감, 전략적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빛내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우리 스스로가 광고에 대해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겠지요."

광고의 길에 입문한지 20년, 그리고 일기인으로 산지 15년. 최초의 질문으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와 광고 사이에는 무수히도 많은 대화들이 오고갔으리라. 그리고 그 숱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들이, 세상과 소비자와 공감하는 뭉클한 현장에서 김홍탁 CD는 매번 단 한 가지 진슬을 깨닫는다. 그 때 그 거리에서 광고가 그에게 말을 건넨 순간,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의 매혹이 주술처럼 그의 삼장에 각인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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