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당신은 광고였나요? - 탁정언(프리랜스 카피라이터)
2006.11.28 04:46 , 조회수:5701


나는 네가 광고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광고는 소비자와 통해야 합니다. 광고기획을 할 때 모두가 머리 아프게 머리를 굴리는 이유는, 기업과 제품을 소비자와 잘 통하게 하려는 책임과 의무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리서치로 시작해서 F.G.I로 이어지는 소비자와 통하기 프로세스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광고인만큼 소비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비자는 광고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는 광고를 거의 믿지 않는 편입니다. 일부러 지어낸 거, 꾸며낸 거, 사실이 아닌 거, 광고는 광고니까, 안 속는다며 마음을 잘 열지 않습니다. 광고에 공감을 하고 카피와 비주얼을 기억하면서도, 광고는 광고라고 현실과 명확하게 구분해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소비자가 광고에 영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군요. 과대광고와 술책의 희생양이 되어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광고인이 그렇게 말한 것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 광고를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광고는 모두 광고 같습니다. 강력한 임팩트를 투여하고, 뜻밖의 레이아웃을 펼치고, 색다르게 일러스트 처리를 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믿음직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인기 연예인을 내세우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미리 맛보기를 보여주고, 드라마틱하게 시리즈로 보여주고…… 별의 별 기법을 다 동원해서 광고를 만들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광고기획회의에서, 소비자와 통하는 광고를 제작해야 한다는, 어쩌면 위협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면 크리에이터는 적나라하게 광고 같은 광고 발상에 몰두하기 십상입니다. 당장 소비자에게 비굴해져서, 소비자님, 고객님,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 주부님, 자녀님 하고 허리를 굽히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진데다 과대광고와 술책의 희생양이 되는 바람에,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소비자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지 의심입니다. 광고의 수작이라고 즉시 무시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소비자는 크리에이터의 수를 다 읽는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터가 소비자에게 무작정 비굴해져서는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소비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마케팅의 황금시대는 없으며 사실상, 소비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크리에이터가 그렇게, 차라리 소비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소비자 앞에서 서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초짜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사실 크리에이터의 캐비닛 속은 소비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으로 가득해서 더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 분양광고는 입지와 투시도를 조금 과장되게 근사하게 그려야 하고, 화장품 광고는 미모의 모델이 나와야 하며, 패션 광고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다이어트 광고는 입증을 해야 하고, 휴대전화 광고는 패셔너블해야 하고, 금연보조제 광고는 위협을 해야 소비자가 끌려온다는 식의 지식과 경험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아파트 분양광고는 환상적인 입지도와 투시도 광고 일색이고, 화장품 광고는 잘생긴 모델만 보이고, 패션 광고는 이상한 포즈의 말없는 모델만 보이고, 다이어트 광고는 증명하느라 바쁘고, 휴대전화 광고는 패셔너블하고, 금연보조제 광고는 흡연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나만 예로 들면,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금연에 대한 자신감을 주는 것이, 금연에 성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새롭게 입증하고 주장하고 또 보도되는데도, 금연보조제 광고는 언제나 담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끊기 힘든지 위협하기 급급한 것이지요. 그런 광고를 자주 접하게 되면, 몸에서 크리토솔이나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생성되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래서 더 담배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소비자를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이 소비자로 하여금 광고를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군요.



당신은 광고군요.

6월 어느 날, 소비자에게 아부하는 광고의 숲에서, 저만치 거리를 두고 조용히 서 있는 광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모두들 광고처럼 광고하느라 한눈에 다 광고로 보이는 광고의 숲에서, 광고 같지 않았던 광고는 남산 플래티넘 분양광고였습니다. 신문에서 광고 같지 않게 근사한 한옥 작품사진으로 눈길을 멈추게 한 것이었죠. 남산 플래티넘은 중견 건설회사가 남산에 짓는 상당히 고급스런 아파트인 모양입니다. 청계천에서 남산, 용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시 녹지축에 위치해 있으면서 대형평형으로 이루어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였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아파트였지만 한동안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크리에이티브가 조금도 소비자에게 아부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차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산 플래티넘 분양광고는 첫눈에는 광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옥마을을 연상시키는 한옥 처마와 그 사이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을 작품으로 찍은 작품사진으로 보였으니까요. 사진 가운데 ‘하늘 아래의 당신’이라는 아부성 카피가 있는데, 전체 크리에이티브 컨셉 때문인지 아부성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용산을 시작으로 남산은 고급 주상복합타운이 형성되는 개발지역으로 이 지역에 대한 투자자와 실수요자의 관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 남산지역을 앞에 내세운 플래티넘이라는 브랜드는 이미 대기수요로 가득 차서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이어지는 광고는 안개 낀 소나무 숲입니다. 그것이 남산의 소나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역시 광고라기보다 한 편의 작품사진으로 보입니다. 피톤치드를 풍부하게 발산하는 소나무 숲이,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좋게 만듭니다. 꼭 핵심 타깃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카피는 사진의 의미를 더해줍니다. 이쯤에서 건물 투시도가 등장하고 광고라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광고도 역시 작품사진 같습니다. 사진 속 숲길을 따라 내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남산 그 숲의 아침’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 오려서 액자에 걸고 싶은 충동도 느껴집니다. 사진 아래 광고라고 드러내는 투시도와 카피요소가 없다면 말이죠. 그런데도 어쩐지 속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분양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 따위의 속이 뻔히 보이는 경고성 카피를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광고, 패러다임 뒤집기

모두들 광고를 광고처럼 만들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광고를 믿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아이디어는 좋은데, 그림은 좋은데, 카피는 좋은데, 공감은 하겠는데…… 일부러 지어낸 거다, 꾸며낸 거다, 사실이 아니다, 광고는 광고니까, 안 속는다고 놔둘 게 아니라, 광고는 사실이며 실제이고 정보라고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뒤집을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차별화가 아니라 광고라는 패러다임 뒤집기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크리에이티브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해서웨이를 입은 사나이’나 ‘말보로맨’과 ‘앱솔루트 보드카’를 공부한 이후, 우리는 이미지 지어내기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비자는 초고속으로 변하는데, 인쇄광고 크리에이티브는 지나간 미국식 브랜드 이미지 만들기를 명답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해서는 한눈에 지어낸 광고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죠.



당신은 광고였나요?

사실은 광고가 사실, 진실, 실제였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남산 플래티넘 분양광고는 꾸며낸 이미지 광고였으니까요. 분양은 잘 되었겠지만, 지역이나 브랜드가 Evoked Set에서 바로 Consideration Set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때, 유한킴벌리 광고가, 광고는 사실, 진실, 실제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에 대한 답을 말해줍니다. 더위가 막 시작되던 7월, 숲속의 학교와 여학생들의 모습을 시원한 색채로 일러스트한 유한킴벌리 광고에서 눈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그림 좀 그린다 하는 학생이 수채화로 그린 듯- 이 광고는 신문에 인쇄된 상태지만, 싱그러운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특별한 크리에이티브를 가동하지 않았는데도, 별의 별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자꾸 보게 됩니다. 싱그러운 것이 기분이 좋으니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서 기분 좋게 건강해지는 화학물질이 생성되었겠지요. 소비자가 그 느낌만 갖고 카피를 읽지 않아도, 유한킴벌리라는 브랜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광고의 소임을 다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카피를 세세히 읽어봅니다. ‘배움은 숲에서 시작됩니다’로 시작하는 카피는 한 줄 한 줄 과장하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고, 사실만 이야기하면서 소비자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작은 카피를 모조리 다 읽고 나니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유한킴벌리가 나무를 원료로 사용하는 기업이고, 그래서 숲을 가꾸는데 많은 공과 노력을 들인다는 사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광고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라면 일부러 지어낸 거다, 꾸며낸 거다, 사실이 아니다, 광고는 광고니까, 안 속는다고 말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봅니다. 이 광고는 사실일 것이니까요. 유한킴벌리 광고처럼 광고가 소비자에게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탁정언(프리랜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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