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그가 꿈꾼 길은 결국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장기하
2014.06.24 02:47 INNOCEAN 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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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꾼 길은 결국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장기하
Interviewer. Lee Hyun Seok (Sr.Vice President, INNOCEAN Worldwide)
Photography. Kim Dong Yul Cooperation. Foresta
30여 년 전, <산울림>의 첫 공연에서 전율을 느꼈던 한 광고인, 그리고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답을 찾아낸 한 음악인. 이 두 사람에게 창작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직관이라는 대화 소재는 세대의 차이를 잊게 만들 만큼 서로의 가슴에 늘 뜨거운 화두로 간직하고 있는 공통점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와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이현석 전무가 만났던 어느 금요일, 이 둘이 함께한 두어 시간의 기록을 공개한다.
이현석 전무(이하 이) 오늘 장기하 씨를 만나러 오기 전에 마침 중앙일보 기사를 봤어요. 리버풀에 다녀온 내용인데, 그 기사에서 스스로를 길치라고 밝혔더군요. 길을 잘 못 찾는다는 이야기인데, 음악에서는 새롭고 독특한 시도로 자신의 길을 잘 찾아낸 과정이 비교되어 재미있게 읽었어요.
장기하(이하 장) 실제로 길을 찾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에요. 음악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인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디 뮤지션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인디의 길을 택하는데,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저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 대중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오든, 음악을 듣고 난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그게 많아봐야 100 명, 200 명이지 몇만 명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이 소위 인디라고 하면 소수의 열광이나, 특별한 계층이나, 연령대를 타깃으로 삼기 마련인데,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음악을 할 때에도 대중성이라는 부분에 욕심을 가졌군요.
장 그렇죠. 듣는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부르는 사람인 저와 듣는 사람인 상대방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들으려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많은 대중이 제 음악에 공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죠
이 스스로 보기에, 인디라는 장르와 대중적이라는 장르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장 그건 개념의 문제인데, 인디와 마이너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인디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거나 거대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스스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마이너는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인디로 출발해서 메이저 장르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제가 보기에 인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메이저 급으로 성장하게 된 가장 좋은 예가 <산울림>이라고 봐요. 제가 그 세대예요.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전까지 대중가요를 이끌던 장르와 확연히 달랐죠. 인디, 마이너리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신드롬, 트렌드로 돌풍을 일으켰죠. 그런 의미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장 결과적으로 저희가 <산울림>을 롤 모델로 삼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특별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어요. 대중 음악을 언급한 것도 클럽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의미였지, 인기를 위해서 TV 프로그램에 나가고 프로모션을 하고 그럴 계획은 전혀 없었죠.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저희 밴드가 인기를 얻게 된 과정이 <산울림>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 분들도 특별한 생각 없이, 졸업 기념으로 자작곡을 묶어 앨범을 발표한 것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저희보다 <산울림> 선배들이 더 전략이 없으셨다고 봐요. 저희는 계획은 없었으나, 최종 목표는 대중이 좋아해주길 바랐으니까요.
이 음악을 시작할 때, 산울림과 교류가 있었나요?
장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에 시작한 밴드이고, 2002년부터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밴드 활동을 했어요. 그 밴드가 롤 모델로 삼은 밴드가 바로 <산울림>이었어요. 그 전에는 그렇게 오래된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밴드에 들어오려면 <산울림> 음악을 카피라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들어보다가 빠져버린 거죠. 결국엔 어떤 생각까지 했나 하면 한국어로 록 음악을 한다고 하면 이게 정답이라고,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산울림>에서 가지를 쳐서 그 시대의 음악을 듣다 보니 당시의 음악들이 좀 더 우리 식의 정답에 가까웠다고 생각했어요. 그 느낌이 우리 음악에도 많이 반영됐고, 장기하 음악에도 많이 반영됐죠. 교감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따로 뵙지 못하고 나중에 김창완 선배님을 술자리에서 뵈었어요. 저는 기억하는데 그 첫 만남을 선배님은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구요. 그 다음에 서로 기억을 하는 첫 만남은 EBS의 <스페이스 공감>에 ‘헬로 루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저희가 ‘이 달의 헬로 루키’와, ‘올해의 헬로 루키 7인’에 들어서 연말 <산울림> 헌정 공연을 다같이 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 1절을 부르면, 간주 때 김창완 선배님이 깜짝 등장해서 2절을 부르시는 무대였죠. 그 후에는 아껴주시고, 투어도 함께 하고 공연도 여기저기서 같이 하고 그랬어요.
돌이켜보면 <산울림> 음악을 처음 접하고, 빠져든 그 시기가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없었으면 <장기하와 얼굴들>도 없었을 거예요. <산울림>을 알고 빠져들기까지가 몇 달 걸리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송골매, 송창식, 정태춘, 신중현 등 1960~80년대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그게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비틀즈도 그때 알게 되었죠. 대중적인 노래 몇 곡 알던 정도였는데, 한국 밴드를 들으면서 영미권 밴드로 확장되어서 음악을 진지하게 듣게 된 거예요. 그때가 음악인이 되는데 있어서 필수전공이라고 해야 할까요? 1학년 전공과목이었던 셈이죠.
이 그 시대의 음악을 ‘가요적 명곡’ 이라고 표현했던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장 가요(歌謠)라면, 대중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죠. <송골매>와 <산울림>의 음악을 지금으로 따지면 <빅뱅>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어요. 전위예술을 하던 분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신중현 선생님의 ‘미인’도 모두 흥얼거릴 수 있잖아요. 그와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명곡이라는 것이 지금의 노래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장기하 씨의 목표도 가요적인 명곡을 만드는 것인가요?
장 지금은 그렇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죠. 전위적이거나, 인기만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산울림>의 음악처럼 정말 주옥같으면서도 가요인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 가사나 곡도 직접 쓰는데, 창작에 대한 인사이트는 어디서 얻고, 어떻게 발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궁금합니다.
장 저는 참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든지 그런 것들. 실제로 슬픔의 감정이나 구체적인 인간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에서 빌려 쓰죠
이 창작에도 주기가 있나요? 폭발적으로 뭔가가 생각난다든지 아니면 슬럼프라든지.
장 보통 답보 상태예요. 어떤 순간이 있는 거죠. 그 순간에 꽂혀서 긍정의 에너지가 솟을 때가 있어요. 1집을 만들 때는 모든 순간이 그랬고, 2집은 일부러 만드는 것도 해봤어요. 초반 몇십 초 만들고 난 이후엔 몇 달 동안 두고두고 고치기도 하고요. ‘TV를 봤네’, ‘그렇고 그런 사이’는 한 번에 후루룩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든 곡들이 역시 반응이 좋더라구요.
이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는데, 스스로 인디나 마이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중 프로그램에 나가면 신비감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있잖아요? 독립성을 지향해야 하는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장 예능 자체에 거부감은 없어요. 하지만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프로그램에 나가면 아마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부자연스러워지면 저는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이번에 <힐링 캠프>에 출연한 것은 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실제로 녹화하고 나서도 느낌이 좋았어요. 잘되는 프로그램은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 TV 프로그램의 진행 같은 섭외가 들어온다면?
장 저는 이제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요. 매력싸움의 무한 경쟁의 장에 들어섰다고 봐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건 없어요. 예능이든 프로그램 진행이든 광고든 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섭외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와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여러 요소가 딱 맞아야만 좋은 결과를 낸다고 생각하고, 지금으로서는 라디오 DJ를 시작한 것이 옳다고 봐요. 처음에는 마치 출근하는 것 같은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매일 정해진 일을 해내는 것에도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이 홍대에서 공연을 시작했으니 이곳이 익숙 할텐데, 요즘은 공연장이나 아티스트들도 이동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혹시 장기하 씨가 요즘 낭만을 느낀 곳은 어디인가요?
장 문래동에 ‘로 라이즈’라는 클럽이 있어요
이 최근 쉬는 동안에 리버풀에 다녀와서 ‘뜻밖의 발견’이란 말을 했던데, 뜻밖의 발견이란 것도 아티스트에게는 중요하죠? 발견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장 전 여행이 너무 좋아요.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외국 여행을 가면 공연을 많이 봐요. 일본만 가도 좋은 공연들이 항상 있으니까요. 관객 50~60명 앞에서 공연하는 유명 뮤지션들이 항상 있어요.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죠.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은 미국에서 본 폴 매카트니. 세 번 봤거든요. 미국에서 연이어 이틀을 보고 최근에 영국 가서 한 번 봤는데, <장기하와 얼굴들> 2집은 폴 매카트니 공연을 본 에너지로 만들었어요.
이 장기하 씨는 그 직관에 따른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 비결을 묻고 싶군요.
장 저는 각자 자기의 직관에 집중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어울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만의 뚜렷함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해요. 그래서 너무 바쁜 것도 안 좋아하고요. 이것은 모두가 공유할 만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이 광고계도 포장이 잘되어 있어서 그렇지, 타고난 직관과 재능이 필요한 분야예요. 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방법, 사고법 이런 교육을 많이 받아서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도 있지만, 어설픈 관심을 가지고 성공하긴 힘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행운이죠. 그 두 개를 잘 조화시키는 사람이 결국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겠죠. 광고도 조금이라도 뒤틀거나 쪼개서 달리 보여주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늘 딜레마고 고통이에요. 아직 광고에 출연한 적은 없죠?
장 전 광고는 좋은 내용이라면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일 년 정도 됐어요.
이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기하 씨의 음악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어떨것 같아요?
장 전 차라리 다시 만드는 것을 선택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섭외가 들어와도 광고를 아예 안 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저희는 일개 힘 없는 신인 밴드일 뿐인데, 우리의 생명줄은 이미지밖에 없는데, 광고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버릴 것 같았어요. 뮤지션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시간을 거쳐 만들어져야 하죠. 하지만 광고는 워낙 강력한 매체이다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과 비교도 안 되게 빨리 우리 이미지를 다른 쪽으로 고착시킬 것 같았아요.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2장의 앨범을 내면서 데뷔 앨범이 그저 운이 아니었냐 하는 의혹 정도는 불식시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광고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저희도 함께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해요.
이 최근에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많지요. 예를 들어 최근 현대카드와 <빅뱅>의 ‘몬스터’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그렇지요. 이런 형태의 작업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장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은 굉장히 섬세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해요. 그래야 결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그런 고집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배철수 씨가 ‘거물이 아니더라도 거물인 척해라’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고집의 줄을 잡고 버틸 필요도 있어요.
장 저는 항상 <장기하와 얼굴들>의 비즈니스 프론터에 있었거든요. 최종 결정은 항상 제가 했기 때문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음악 생명이 끝나는 일은 정말 일어나기 쉬운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본인의 10년 후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항상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장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Music is My Life!’ 이렇게 외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지금까지는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년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항상 저는 음악이 일 순위가 아니라, 제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일 순위예요. 제 스스로 음악하는 것이 싫어졌는데,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보다 인기가 많아지더라도 하기 싫은 음악을 억지로 해서 이상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책임감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음악이 좋아요. 그리고 이제 시작이니까, 오래 지속되길 바라죠.
2008년 5월 결성된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9년 2월, 첫 번째 정규앨범 <별 일 없이 산다>를 발표, 발매 두 달 만에 3만 장이 넘게 팔리며 대중에게 확고한 위치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의 노력은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란 평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6월, 두 번째 정규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이 발표되었다. 1집보다 더욱 매끄럽고 견고해진 그들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바람직한 2집이었다. 이로써, 장기하와 얼굴들이 ‘반짝 인기’를 구가할 것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순식간에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