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REPORT] Lovestory at the, 19금 그 이상, 푸드포르노
2014.06.26 10:26 INNOCEAN Worldwide, 조회수:4416


Text. Jun Cheon Il (Columnist)

 
한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모든 세상 근심을 해결하는 주문과도 같았던 시절이 있다. 디자인의 시대, 어찌 보면 디자인 과잉 시대에 사람들이 조금씩 질려갈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요리’이다. 요리의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헤아릴 료(料)에 이치 리(理)’. 그러니까 우리가 요리라고 부르는 행위와 결과물에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만족할 만한 한 접시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헤아려야 한다. 와인 한 병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지식이 많아질수록 와인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강해지듯이, 요리를 완성하는 데에 변수가 많아질수록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진다는 이야기이다. 집중에 따른 결과가 흐뭇할수록 요리라는 거대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요리로 패션을 이야기하고 스타일을 결정한다

이젠 요리하는 사람들이 문화이고, 패션이고 트렌드이다. 푸드 전문 채널이 생기고 기존의 레서피 중심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스토리와 콘텐츠로 무장한 그들의 자신감을 처음 대했을 때 그 새로움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영화를, 잡지를, 패션 화보를, 토크 쇼를 ‘요리’에 접목한 그들의 시도는 끝이 없을 듯하다.

‘무엇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라는 문장은 먹거리의 건강함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함께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단순히 성게가 아니라 ‘홋카이도산 라리사 우니’를 먹는 것이고 생햄이 아니라 ‘스페인 이베리코 하몽’을 먹는 것이다. 청담동에 정통 스시야가 속속 들어서고, 이탤리언 레스토랑보다 프렌치 비스트로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단순히 스시와 프렌치 요리를 즐기는 것 외에 도쿄 긴자의 고급 스시야와 다를 바 없는 스시 장인의 섬세한 손놀림을 감상하기 위해서이고, 오너 셰프와 함께 와인 한 잔에 셰프가 어떻게 재료를 구해 어떤 방식으로 수제 테린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이다.

배를 채우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요리의 시대는 이미 멀리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제 음식 뒤에 숨은 이야기, 요리적 은유에 대한 관심, 서로 다른 재료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한 접시의 요리로 만들어지는 창의적 과정에 집중한다. 개인 블로그에 음식 만드는 과정을 클로즈업해서 올리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푸드채널을 라디오 듣듯 종일 틀어놓거나, 소설이나 영화 속 음식이 나오는 장면을 탐독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요리책을 들여다보고, 밤과 아침의 어슴푸레한 경계에서 TV 앞에 앉아 요리쇼를 구경하는 이는 침을 삼키며 부엌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무스를 완성한 두 남자가 주방 뒤로 사라진 이후 다음 요리사가 나타나 새로운 쇼를 열어주길 기다릴 뿐이다. 이들은 혀의 미뢰를 자극하기보다는 상상 속의 미뢰를 자극한다. 포르노그래피를 보며 성적 대리만족을 느끼듯, 요리를 묘사한 각종 서사를 들여다보며 식욕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푸드포르노’ 중독자들의 등장이다.





쾌락의 끝은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모든 선한 것의 시작과 끝은 위장의 쾌락이다. 현명하고 정선된 모든 것은 위장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쾌락을 다양한 경험으로 확장한다. 요리는 부엌을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두뇌를 자극한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는 작가의 지독한 탐미주의를 식탁 위의 요리로 확장한 에세이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자라 요리, 순록의 간, 양 뇌 카레와 같이 쉽게 상상하기도 어려운 요리와 대면하게 된다. 게다가 거세한 토끼와 그렇지 않은 토끼의 차이를 논하는 대목에 이르러 상상력의 빈곤을 탓하게 된다. 이렇게 취향 강한 요리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추억에는 모나코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즐거웠던 이유에 이르러 그것이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미식을 따라 단련된 혀와 오감이 얼마나 찬란한 미문을 쏟아내는지 실감할 수 있다. 책에서 벗어나 스크린으로 옮겨가면 그 영향력은 좀 더 강력해진다. <카모메 식당>의 정갈한 오니기리, <줄리&줄리아>의 마지막 오리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심야식당>의 연어 오차츠케의 따뜻함. 이런 콘텐츠는 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현실화되기도 했다.

지금 음식 에세이의 큰 줄기는 ‘힐링’이다. 성석제·백영옥·김창완 등이 쓴 <소울 푸드>에 이어 시인 곽재구·김용택, 농부 최성현,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등 14명이 쓴 <음식의 추억>도 나왔다. 두 책 모두 위가 아니라 영혼을 달래던 음식 이야기를 풀어쓰고 있다. 온라인 도서판매 사이트 예스24에는 <소울 푸드>와 함께 <인생이 있는 식탁> <식탐>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등이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요리가 있는 만화, 요리가 있는 영화, 요리가 있는 여행. 요리로 얻는 즐거움에 빠진 이들은 그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할 기세이다. 요리와 사랑에 빠져 요리가 주는 행복을 아는 이들이 지금 요리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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