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umer Insight] 인공지능은 일과 직업의 패러다임 시프트 촉발
2016.05.31 12:00 광고계동향, 조회수:7329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해 인간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 것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던져주었다. 느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불길한 느낌 혹은 긍정적인 느낌 등등.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지금까지 인공지능에 대한 일반인들의 여론은 긍정보다 부정적인 평가가 앞서 보인다.

이유는 일과 직업에 대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다. “가뜩이나 장기 불황으로 어려운 고용 현실에서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을 대체한다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는냐”는 것이다. 사실 곧 인공지능이 우리의 많은 일과 직업을 대체할 것이고 몇 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지부조화처럼 미래에 다가올 변화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딱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상황에 놓여 있다.


새로운 변화의 방향

그렇다면 일과 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일단 크게 세 가지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대다수의 개인은 조직에 소속된 상태에서 일을 했다. 조직과 일, 직업은 별개의 것이 아닌 동일체였다. 하지만 이제 조직과 일이 분리되고 있다. 조직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과 일하며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개인의 재능과 경험, 시간을 단 하나의 특정 조직이 아니라 여러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나누어 사용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포트폴리오 워킹(Working) 트렌드다. 과거 자신의 재능, 경험 등을 포함한 일체의 노동력을 하나의 조직에 속하도록 해서 사실상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조직에 ‘바치는’ 고용 형태였다. 그리고 주업과 부업,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돈을 많이 버는 일과 용돈벌이 일로 나눠졌다. 반면 지금의 흐름은 개인이 가진 재능, 경험, 노하우, 시간을 필요에 따라 쪼개 국내외 시장에 제공한다. ‘투잡’, ‘쓰리잡’과 혼동될 수 있으나 생계보다 재능과 경험의 노동력으로서 판매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세 번째는 일과 직업의 지향점 변화다. 그동안 성공과 생계를 위한 직업의 선택이었다면 이제 행복으로 방향 전환이다. 행복지수가 낮은 한국에서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꼭 일이 생계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아실현이 우선이 된다. 각자의 기호와 취향으로부터 시작된 취미가 일로 진화한다.

이를테면 취미로 시작한 ‘드론’ 동호회 활동의 경험이 이후 배달 혹은 언론사 항공 사진 촬영과 같은 일거리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변화의 징후

방향을 살펴보았다면 징후를 찾아보자.

먼저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공개해서 협업으로 자동차를 만든 사례다. 자동차 제작에는 복잡한 공정이 들어간다.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이 2만 개가 넘는다. 얼마 전까지 조직에 소속된 숙련된 직원들이 통상 4~5년의 시간을 투입해 자동차를 생산했다.



지난 2009년 직원 12명의 자동차 회사인 로컬모터스가 출시한 사막·비포장 도로용 자동차 랠리 파이터(Rally Fighter)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로컬모터스는 자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된 전 세계 500여 명의 자동차 디자이너, 엔지니어,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설계부터 제작까지 단 18개월 만에 랠리파이터를 완성했다. 자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공개·공유·협력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실제 차량을 만든 최초의 회사가 되었다.

다음은 조직에서 독립해서 프로젝트별로 일을 진행하는 유형이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본명 장석원)’은 자신의 재능을 N개로 분산해서 일을 한다.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10년 일하다 어느 날 그림에 빠져 서른여섯의 나이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다. 처음에는 여행잡지에 삽화를 그렸다. 이후 각종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수입을 올렸다. 유니클로, 코오롱 옴므, 레스포삭 등 다양한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10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특정한 조직에 속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프로젝트에 자신의 재능을 분산해서 투입하면서 수입도 때로는 일시적으로, 때로는 정기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단순한 재주와 재능을 사고파는 사례다. 파이버(Fiverr)는 이스라엘 개발자가 만든 재능 거래 플랫폼이다. 5달러라는 적은 돈으로 개인의 재능을 사고팔 수 있는 사이트다. ‘5달러에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 ‘영국 억양으로 당신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 등의 흥미로운 서비스가 거래 목록에 올라오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파이버는 전 세계 196개국에서 3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처음에는 장난같은 심부름이나 서비스가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디자인, 마케팅,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이트나 영상 제작, 사업계획서 작성 등 전문적인 업무의 거래가 늘어났다. 또 개인 간 거래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 기업과 기업의 업무도 늘어났다. 광고를 따로 하지 않고도 글로벌 시장에서 언제든지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과거의 ‘프리랜서’보다 훨씬 더 안정되게 일감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투잡과 쓰리잡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사례다.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씨는 카카오톡 커뮤니케이션 홍보이사, 선데이토즈 커뮤니케이션 총괄이사 등 10개가 넘는 회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한 달에 10곳이 넘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용후 씨는 ‘관점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고정된 사무실 없이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일한다. 몸은 하나지만, 개인의 재능을 여러 곳(N개)으로 분산해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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