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세뇌와 긍정의 누적효과, 됩니다! 됩니다! 됩니다!
2023.08.17 12:00 오리콤 브랜드저널, 조회수:1089
 십여 년 전 지인이 들려준 인도여행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것이다. 음식점에서 치킨요리를 주문하니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No problem! 하더란다. 잠시 후 한 소년이 투덜거리며 나갔는데 한참 만에 돌아온 소년의 자전거에는 두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생(生)닭이 실려 있었다고… 그렇게 요리를 주문한 지 꼬박 2시간만에 요리를 먹을 수 있었으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달 동안 기차역에서, 숙소에서,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그 ‘No problem’이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어이없고 당황스럽다가 다음에는 분노와 짜증이 올라와 뭐 이런 천하태평인 사람들이 있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인도인 특유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차츰 스며들게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인도의 ‘No problem’ 문화에 대해 긍정 또는 부정의 개인 의견을 피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상, 그 무엇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인도인들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 깊이 뿌리내려 공통의 가치관이자 문화가 된 것이라 생각하면 ‘No problem’은 차라리 인도스러운 심오함이 담긴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태어나 인지능력이 생긴 후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 ‘안 된다’가 아닐까? 울면 안 되고, 뛰면 안 되고 떠들면 안 되고 나대면 안되고 모 나게 굴어서는 안 되고 너무 튀어도 안 되고 남들과 다르면 안 되고… 그렇게 평생 ‘안 된다’ 문화 속에서 자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이 성적으로는, 이 외모로는, 이 학벌로는, 이 실력으로는 이 돈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 국제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유소년 축구가 4강에 들고, 세계적인 콩쿨에서 1등을 휩쓰는 천재적 DNA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분명 다들 천재가 맞았는데 점점 ‘안 된다’ 문화 속에서 길들여지면서 천재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두뇌는 어떤 루틴 행동이든 그것을 자동화하는 데 열중하는 '습관의 기계'라고 한다. 블레즈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 했고, 뇌 과학자들은 습관을 일종의 '자동화' 라고 보고, 생각-행동-습관으로 이어지는 뇌의 알고리즘을 밝혀냈다. 생각도 습관이다. 객관적으로 못 생긴 축이었던 아들을 “너는 정말 잘 생겼어.” 한 마디로 자존감 넘치게 키워낸 현명한 어머니의 세뇌, “너는 잘 될 수밖에 없어. 너는 크게 될 거야”라는 말로 수많은 제자들의 가능성을 틔워준 학창시절 선생님의 세뇌처럼 광고도 일종의 세뇌다.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가 원하고 또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과학이며 심리전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먼저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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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Pay의 범용성을 딱 한 마디로 간결하게 정리해버리는 KB Pay 광고의 한 장면


Pay의 다른 말은 ‘간편결제’다. 쉽고 빠르고 간편해야 하는 것 그것이 Pay의 본질이다. 당연히 언제 어디서나 막힘 없이 사용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거절의 말을 듣기도 한다. “손님 그 페이는 안됩니다” “다른 페이 없으세요?”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진다. 이런 고객의 불편한 감정(Pain Point)에서 아이디어는 출발한다. 구구절절한 설명 따윈 없다. 그저 수많은 결제의 TPO(Time, Place, Occasion) 순간마다 마치 답정너처럼 “됩니다!” 이 한마디만 줄기차게 외칠 뿐이다. 빅모델의 ‘됩니다’ 한 컷으로 30초 광고를 무한 반복 돌려막기 해버린다. Pay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답이기라도 한 것처럼,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만 남겨버린다. 어디서든 누구든 ‘다 되는 페이’라는 속성을 딛고 “다 되는 KB Pay”로 정면 돌파해버리겠다는 식이다. 어떤가. 난감했던 반쪽짜리 Pay의 추억과 트라우마가 깨끗이 씻기는 것만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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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타이밍이다. 결제도 타이밍이다. 그 순간은 길어야 몇 초일 것이며, 깊은 고민 같은 건 필요치 않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나도 모르게 광고의 메시지에 스며들어 마침내 나도 모르게 지갑 대신 폰을 켜고 앱을 켜게 만드는 것. 광고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처음’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화가 된다. ‘할까 말까 하는 말은 하지 말고, 할까 말까 하는 일은 저질러라’는 말처럼, 된다고 생각하고 뭐든 하면 된다. 어차피 인생에서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된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테니. 살다 보면 언젠가 무엇이든 이루게 되는 날도 오고야 말 테니. 속는 셈 치고 믿어보자. 아님 말고.

[김미경 IMC크리에이티브 제작본부 ECD] - 매일경제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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