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중앙아시아의 보물 카자흐스탄 광고
2009.07.29 11:02 대홍 커뮤니케이션즈, 2009년 07-08월, 203호, 조회수:7685
written by 전형정(카자흐스탄 통신원)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로 빠르게 변화하며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이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안에서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광고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가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우리에게 멀고도 가까운 나라다. 아직 일반인의 교류가 잦은 건 아니지만 10만 명 이상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교민도 늘었다.

양국 정상은 투자 유치와 자원 외교 등의 경제 협력을 위해 서로의 국가를 방문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12월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민주주의와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원유·가스·광물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주변 강대국과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130여 인종이 모여 살지만 인종 간의 갈등을 겪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고 알려졌을 만큼 다문화를 잘 융합하고 포용하는 국가기도 하다. 수도는 아스타나(astana)지만 상업 중심 도시인 알마티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세계 9위에 해당하는 드넓은 면적에 비해 1,500만 정도의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

아직은 외국 광고 의존도 높은 편

빠른 경제 성장은 자연스레 광고산업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 이후 개발 붐이 일면서 광고도 해마다 3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광고시장 대부분은 TV광고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이 충분한 시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카자흐스탄인은 한번 믿은 회사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입소문을 신뢰하는 경향이 짙다. 광고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비싼 TV 광고료까지 더해져 광고에 대한 투자 개념이 약한 편이다. 비싼 돈 들여 TV광고를 제작하고 오랜 기간 방영하는 것에 대해 자국 기업들 대부분은 그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벤트, 경품 행사 등 꼭 필요할 때 짧은 기간에 광고하는 형태가 많다.

치열한 TV광고의 경쟁이 펼쳐지는 것은 단연 드라마 전후 시간대. 카자흐스탄 사람은 드라마를 좋아해 터키·러시아·우리나라 등에서 드라마를 수입해 방영하는데,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는 7개의 광고가 몰려서 나오기도 한다.

카자흐스탄은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해 공산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TV광고를 장식하는 제품 역시 거의 수입품이고, 광고도 외국에서 만든 것을 러시아어나 카자흐어로 더빙해서 내보낸다.

광고의 대부분은 통신사·가전제품·음식·은행 등 특정 분야로 한정되어 있다. 통신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어 여러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 업체의 광고가 특히 많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우리나라 전자 업체는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광고주에 속한다. 은행광고도 꽤 많이 방영되는데, 집 안에서 잠자고 있는 돈을 끌어내 통화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국가 정책 때문이다(광고1).



다양한 매체의 활용이나 광고 표현의 수준은 아직 광고시장의 성장을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음식은 고기· 양파· 밀가루의 세 가지만 있으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광고도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자체 제작한 광고는 직접적인 멘트와 함께 상품을 소개하는 광고가 대부분이고, 세련된 광고는 거의 외국에서 제작되어 더빙한 것이다. 공산 국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의 습성 속에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어 창의적인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를 혼용해 사용한다. 독립 이후 러시아어를 줄이고 카자흐어로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상류층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러시아어 교육을 받고 자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TV광고에도 러시아어와 카자흐어가 특별한 기준 없이 난립한다.

한 편의 광고가 때로는 러시아어로, 때로는 카자흐어로 방영되는 웃지 못할 광경도 펼쳐진다. 하지만 최근 카자흐어로만 방영하는 광고가 늘었고, 어린아이들은 강력한 국가 정책 아래 카자흐어로만 교육을 받아서 한 세대가 지나면 러시아어가 거의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화를 녹여낸 자체 광고

해외 광고들의 홍수 속에서 카자흐스탄 자체 제작 광고는 카자흐스탄만의 문화와 역사,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카자흐스탄 사람은 하루에 차를 보통 10잔 이상 마실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삐알라 골드(금 찻잔이라는 뜻) 차 광고는 심플한 영상으로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적 속성까지 잃지 않는 재치를 발휘한다(광고2).



‘새 땅에 새로운 삶, 삐알라 골드! 새로운 포장에 담겨 있는 풍부한 맛이 가까이에…’라는 카피로 시작되는 이 광고는 카자흐스탄이 독립해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차 문화도 새로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화면에는 찻잔 두 개를 거꾸로 붙여 모래시계 모양을 만들고 차를 내리는 투명한 용기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 삐알라 골드차의 까만 알갱이가 우려지고 있다. 차 밭 장면이 흐르고 새로운 용기에 진한 차를 따른다. ‘삐알라 골드! 좋은 차 시대’라는 말로 끝맺는다. 카자흐스탄 사람은 특히 금을 좋아해 ‘금 찻잔’이라는 뜻의 차 이름에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광고를 살펴보자. 한 남자가 양팔로 두 아가씨의 어깨를 감싸고 앉아 있다. 휴대전화에 국제전화를 쓸 수 있는 칩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칩을 장착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외국에 전화를 할 수 있는 휴대전화의 편리함을 강조한 광고다(광고3).



‘한 개의 칩도 좋지만 두 개면 더 좋다’는 주제 아래 양팔에 감싼 두 아가씨를 두 개의 칩으로 비유했다. 우리나라라면 논란이 됐을 광고지만 카자흐스탄 사람은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아직도 일부 지방에는 일부다처제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익광고가 제품광고보다 많은 나라

카자흐스탄 광고를 이야기할 때 공익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공익광고는 언어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에게 국가관을 확립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려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공익광고는 외국에서 기술을 받아들여 원유를 채취하는 모습, 밀을 수확하는 장면, 주식인 빵 공장에 최신 설비를 갖춘 위생적인 생산 과정을 보여주며 발전되어가는 모습 등을 국민에게 알린다. 아직 다양한 직업군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전문직을 선택하라는 광고도 볼 수 있다. 공익광고에는 대통령도 자주 등장한다.

건설 현장과 공장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흐른 뒤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며 구직 광고란을 보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장면이 바뀌고 한 아가씨가 퇴근한 뒤 집으로 가는 길에 길거리 벽보에 붙은 전화번호 광고를 하나 뗀다. 화면은 그녀가 미용실에서 손님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미용사 전문직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어 대통령이 등장해 “2015년까지 50만 개의 전문직이 필요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앞서 보여준 내용이 국가 정책임을 확인시킨다. 성우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전문직은 국가의 자랑입니다”라고 외친다.

전문직의 필요성을 알리고 국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문직을 선택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광고다. 이 공익광고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을 모델로 내세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거리를 메운 빌보드 광고

카자흐스탄 TV광고 다음으로 많이,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빌보드 광고다. 한창 개발 단계인 카자흐스탄에는 건물이 많지 않아 드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고 빌보드 광고를 하기에 좋은 장소가 많다. 광고주는 빌보드 광고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비싼 비용 때문에 많이 방영하지 못하는 TV광고 대신 오랜 기간 대중에게 노출되는 빌보드 광고는 광고 효율 면에서 더 우수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빌보드 광고를 많이 집행하는 광고주는 가전제품이나 통신사, 은행이다(광고4, 광고5).




최근 불어 닥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카자흐스탄의 광고시장 역시 타격을 입어 TV광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직 견고하지 못한 카자흐스탄 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크게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수없이 많은 자원만큼이나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카자흐스탄의 빠른 경제 회복과 광고시장의 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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