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빠진 공학도
2025.06.18 03:06 광고계동향, 조회수:153

 광고에 빠진 공학도

글 한재영 AE | 이노션

도대체 왜 지원하셨어요?
수많은 면접을 보았지만, 항상 일관된 반응이 저를 반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면접관들에게 생소한 전공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AE입니다.


스필버그를 꿈꾸던 공대생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영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감정은 항상 저를 가슴 뛰게도, 울먹이게도, 따뜻해지게도 만드는 마력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이런 제가 느꼈던 경험들을 누군가에게도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저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꿈은 꾸었지만, 그것을 위해 달려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제가 광고를 할 수 있 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돌 하나가 야기한 큰 파형
대학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을 때였습니다. 공대생으로서 취업 준비를 위해 자격증을 따고, 마침 시간이 남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카피라이터를 준비하던 친구의 권유로 29초 영화제(박카스 광고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시점에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은 단념했던 터라, 무념무상으로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이때를 기점으로 광고에 몰입하게 됐습니다.
광고와 영화는 많이 닮아 있습니다. 형태를 떠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언어와 문법을 사용합니다. ‘이야기’를 매개로 감정을 움직이고,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시각과 청각을 총동원합니다. 광고는 단 몇 초 안에 브랜드의 철학과 매력을 설득해야 하고, 영화는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인물의 세계를 설득해야 합니다.
결국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둘은 모두 감정의 흐름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예술입니다. 그래서 좋은 광고는 짧은 영화처럼, 좋은 영화는 광고처럼 강렬하게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유사성에 저는 광고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광고, 그 빛과 그림자 속에서
처음 광고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작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 수는 5명 남짓, 사무실도 협소했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광고 AE를 시작 했습니다. 기획서 하나에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 그럼에도 수주하지 못해 아쉬웠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열정과 패기는 지금의 저에게 귀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현실의 벽도 함께 다가왔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몇몇 회사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침체되면 가장 먼저 예산이 줄어드는 곳이 광고·마케팅 분야입니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브랜딩 전략이고, 그 중심에 있는 광고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회사 문이 닫힐 때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의 이별은 물론이고, 하나의 꿈이 사라지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제 광고 산업 자체가 외부의 시선에서도 점차 부정적인 인식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생들이 매스컴을 통해, 드라마 속 과장된 모습에서, 혹은 업계에 종사했던 선배들의 회의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광고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광고는 결국 거짓말을 잘 포장하는 기술일 뿐’이라는 편견 속에서, 이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진심과 고민은 쉽게 묻혀버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렵고 불확실한 시기일지라도, 이 업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광고가 단순한 상업적 수단이 아닌, 문화와 가치를 전달하는 창조적 매체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한 편의 광고를 기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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