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광고
2009.08.26 09:45 Cheil Worldwide, 2009년 07월, 402호, 조회수:8126
이정락ㅣE.CD·상무 jounrack.lee@cheil.com



올해 칸 광고제는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출품작이 20%나 줄었다. 그러나 새로움을 향한 칸의 도전정심만은 변함이 없었다. 많은 이변과 이슈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은 필름부문 그랑프리를 TV가 아닌 인터랙티브(Interactive) 필름이 받았다는 것이다. 필립스 시네마21: 9TV의 ‘회전목마(Carrousel)’편을 소개하려 한다.

광대 탈을 쓴 수십 명의 무장 강도와 경찰들이 병원에서 벌이는 총격전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총탄 하나까지 멈춰 있는 상태를 카메라가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담은 4분 50초짜리 영상이다. 이 작품은 쟁쟁한 TV필름 출품작을 제치고 그랑프리를 거머쥐게 된 이유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가장 잘 집어내어 활용한 광고였기 때문이다. 

TV에 가장 어울리는 영상물임에도 불구하고. 필립스는 TV같은 전통적인 미디어 대신에 인터넷이라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택했다. ‘전통적인 미디어’를 포기한 덕에 이 광고는 ‘전통적인 제약’을 없앨 수 있었다. 이 영상은 원래 1분 길이로 기획되었으나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점점 분량이 더해져서 결국 5분까지 늘어났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제한이 없는 인터넷 미디어의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이 영상에는 필립스TV이야기가 없다. 다만 재생창 아래에 16:9와 21:9의 두가지 비율을 선택해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필립스의 21:9 시네마TV로 볼 때 훨씬 박진감 넘친다는 것을 시청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였다. 이것 또한 인터넷 미디어가 가진 인터랙티브한 프레임의 장점을 이용한 것이다.

필립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시도까지 더했다. 영상 중간중간에 뜨는 설명창을 클릭하면 촬영감독, CG디자이너 등이 영상 속에 등장해서 이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등을 설명해 준다. 시청자는 이 ‘Behind the scene’을 원하는 것만 골라서 볼 수 있다. 보통 촬영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인터넷으로 따로 검색해서 보거나 엔팅 크레딧이 올라간 다음에 트레일러로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이용했기에 이런 실시간 감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칸은 결코 의뭉스럽지 않다. 소비자의 환경이 변하면 미디어가 변하고, 칸의 그랑프리는 다만 그 흐름을 빨리 읽어 낸 ‘용감한’ 광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칸은 전통적인 미디어를 넘어선 웹2.0 시대의 소비자 접점을 파악하고 그 곳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무게중심점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점에 그랑프리 수상작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을 텍스트로만 설명하고 나니 자가당착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초만 투자해서 주소창에 www.cinema.philips.com를 치고 감상해 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앍은 글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D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