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교에 빠지다.
2010.04.02 02:09 제일 커뮤니케이션즈, 조회수:5661
 
김홍탁  I 인터랙티브 제작그룹 CD

사실 국산 MP3 아이리버가 가격 대비 기능 면에선 월등했지만, 아이팟은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며 사람들의 혼을 빼앗았다.

스타벅스가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팔았다고 얘기되듯이 아이팟은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이었으며 워크맨의 뒤를 잇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혁명이었다.

바야흐로 애플이 컴퓨터 사업을 뛰어 넘어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의 변혁을 몰고 올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 바통을 아이폰이 이어 받았다. 아이폰은 폰의 개념 자체를 바꿔버렸다.

알다시피 아이폰은 이름만 폰일뿐 모바일 OS시스템을 갖춘 소형 컴퓨터이다. 그 소형 컴퓨터에 통화의 기능을 첨부했을 뿐이다.

독과점을 형성했던한국의 이동통신 서비스사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이폰의 유입을 허용했고,마침내 아이폰을 손에 넣은 애플 마니아들은 마치 로또에 당첨이라도 된 듯 기뻐했다.
 
이제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접속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날린다. 그리고 아이폰 유저들끼리 앱스토어에서 무엇을 다운받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첫 일과가 되었다.

그들은 그러한 생활의 변화 자체를 즐긴다. 컴퓨터보다 화면이 작고 불편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SNS에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까짓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미디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을 좀 알고 얼리어답터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스티브 잡스교의 신도가 되어 있다. 소비자가 아니라 팬을 원한다는 잡스의 꿈이 정확히 실현된 셈이다.

사람들은 이제 애플에서 만든 i시리즈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특정계층에 속해 있다는 환상에 젖는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처럼 상품을 통해 특정계층에 속한다는 환상을 갖는 것을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라 칭했다.

파노플리란‘집합(Set)’이란 뜻으로, 판지에 붙어 있는 경찰관 놀이 장난감 세트처럼‘동일한 맥락의 의미를 가진 상품의 집단’을 말하는데, 어린아이가 경찰관놀이 세트를 가지고 놀면 마치 경찰관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에서 파노플리 효과란 용어가 생겨났다.

이와 비슷한 이론으로 우리는 베블렌 효과를 기억하고 있다.

이 용어는 미국의사회학자인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이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이는 신분의 분류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여전히 자신이 귀족신분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부유층들이 과도하게 비싼 귀금속, 자동차 등을 구입하거나 쓸 기회도 없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자신이 일할 필요가 없는 유한계급임을 보여 주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파노플리 효과는 이와는 좀 다르다. 베블렌 효과가 속물근성을 통해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파노플리는 트렌드세터의 그룹에 속하겠다는 특권의식이기 때문이다.

아이팟, 아이폰이 중산층이 구매하기에 엄두도 낼 수 없는 고가 제품은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이 사회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선봉에 서 있다는 자기 만족감을 갖는 것이다.

애플의 제품을 통해 파노플리 효과를 증폭시킨 데는 물론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가 큰 몫을 했다. 그는 정말로 수많은 광신도들을 거느린 교주의 모습을 닮았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의 마력을 표현하기 위하여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란 용어까지 만들어졌을까. 현실왜곡장은 잡스 주위의 사람은 물론 그의 연설을 듣는 청중, 그리고 애플의 소비자들에게 그가 행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심리적 영향력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잡스 옆에서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평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자신도 모르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왜곡장은 마치 지진의 진원지처럼 잡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한번 현실왜곡장에 들어갔더라도 잡스에게서 거리가 멀어지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멀어지더라도 마치 현실왜곡장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팬보이(Fanboy)라고 부른다 한다. 우리말로 광신도인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아이패드 프레젠테이션에서 스티브 잡스의 야윈 얼굴을 보며 그의 신도들은 참으로 많은 걱정을 쏟아냈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잡스의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무튼 잡스는 i시리즈의 제품을 통해이 시대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구원의 빛을 선사한 카리스마 넘치는 교주임에 틀림없다.

지금 잡스교의 신도들은 한국에 아이패드가 상륙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머지 않아 노트북 대신 얇은‘판때기’하나 들고 다니며 필요한 모든일을 해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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