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ide] 아프리카 소녀, 아프리카피라이터가 되다
광고계동향 기사입력 2026.02.23 11:14 조회 15

아프리카, 지나 왔습니다


 글 박지나 카피라이터 | 펜타클

우선 주니어 카피라이터로서 글을 기고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란 제가 한국에서 카피라이터라는 명함을 갖게 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수상하고도 운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이죠.
 
아프리카 소녀, 아프리카피라이터가 되다
아프리카의 야자나무는 바람이 불면 빗소리를 냅니다. ‘비가 오는 건가?’ 싶어 밖으로 뛰어나가면, 먹구름만 가득한 천수답의 시간을 마주하곤 했죠. 전기마저 끊겨 물탱크조차 돌릴 수 없을 땐, 이웃 동네에서 5L 생수통을 이고와 분무기 샤워를 해야 했던 아프리카의 밤. 아잔 소리마저 멈춘 고요 속에 달빛 아래 그림자놀이를 하던 그 치열하고도 평온했던 야생의 시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바라 보는 힘을 가르쳐주었습니다.그런 저에게 광고는 솔직히 상관없는 세계의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당장에 먹을 밥도 없는데(!) 생존이 최우선이던 그곳에서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누군가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품기도 했죠. 그것이 광고의 전부라고 믿었던 저의 좁은 시야는, 한국에서 마주한 한 문장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광고는 사람의 관점을 바꾸고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
그 문장이 제 안의 편견을 관통했을 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긍정과 회복의 이야기‘가 가장 치열하게 살아 움직 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광고라는 것을요. 해외에서 와서 어렵지 않냐고 하시는데, 저에게 언어는 장벽이 아닌 관점의 확장입니다. 관습에 갇히지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게 제 무기죠. 그래서 생각보다 더 마뜩합니다. 매일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쪼개진 발굽을 가진 광고인
아프리카 산간 지역의 클립스프링거 (Klipspringer)를 자세히 보면 발굽이 수직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그 쪼개진 발굽이야말로 가파른 절벽을 움켜쥐는 예리한 갈고리이자 수직의 세상을 ‘춤추듯’ 뛰어 다니게 하는 독점적 도구입니다. 제가 보기에 광고인들도 다들 쪼개진 발굽을 가진 ‘다른 종’ 같습니다. 혹은 기어코 쪼개지는 중이거나요. 그러니 남들에겐 막막해 보이는 상황 앞에서도, 매번 딛고 일어설 틈을 찾아 기어이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거겠지요. 춤추듯 어려움을 뛰어 넘으신 모든 광고인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 다. 카피 2년차, 여전히 저의 발굽은 갈라지고 피가 납니다. 써지지 않는 카피를 부둥켜안고 무너지던 새벽과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통 곡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압니다. 그렇게 다듬어졌을 때 비로소 가장 가파른 산을 경쾌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연필과 펜으로 남긴 수많은 상흔이 자랑스럽습니다.

AI시대, 원액을 만들고 춤을 춥시다
AI가 수조 개의 데이터를 조합해 희석된 음료를 만들 때, 저는 직접 굴러먹은 삶의 현장에서 원액을 증류합니다. 패턴은 복제할 수 있어도 삶의 마디마다 새겨진 감각은 결코 알고리즘이 모방할 수 없죠. 세 번이나 사투를 벌인 말라리아의 기억, 붉은 흙바람 속에서 환자들을 위해 불러주었던 노래 모두 데이터 바깥에 존재하는 저만의 오리지널리티입니다.한국에와 배우, 성우, PD, AE, 법원 보조 등을 거치며 겪은 수많은 ‘저’의 파편들조차 카피 한 줄 한 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액이 되는 걸요. 감사하게도 멋진 팀과 함께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밤새 쓴 저의 카피가 처음으로 거리의 전광판에 덮였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이것이 내가 쓴 문장이라 는 게 믿기지 않았죠. 해외 ECD님들 앞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인정 받기도, 직접 클라이언트 앞에서 영어로 PT를 진행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새벽을 가르고 마주한 서늘한 전율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보상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원액 생산자’ 입니다. 그러니 거대한 곰처럼 다가오는 AI 시대의 변화들도 우린 괜찮을 겁니다. 막다른 길에서 마주한 거대 한 곰조차 새로운 ‘문’으로 만들 힘이 우리에겐 있을 테니까요. 그 러니 오늘도 우린 수상하고도 아름다운 동료들과 함께 쪼개진 발굽 으로 춤을 춥니다. 어둠을 가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요! 전기가 없던 밤, 유일한 빛이었던 달빛을 기억합니다. 욕망을 자극하기 보단, 희망을 건네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야생의 눈으로 세상을 낯 설게 바라보며, 한 문장 한 문장 원액을 증류하는 아프리카피라이터, 박지나입니다. 지나가지 마세요.
adz 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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