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광고회사 <아이디엇>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이승재입니다. 좋은 기회로 <광고계동향>에 저와 <아이디엇>의 고일진CD가 함께 광고인 라이프를 주제로 한 에세이 연재하게 되어 독자분들께 첫 인사를 올립니다. 처음으로 전할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결론적으로 직업병처럼 타깃과 매체에 대한 접근에서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닿을 길 없지만, 어쩌면 지금 광고업에 몸담고 있을지 모를 제 광고 인생에 조금 특별했던 두 사람을 이번 기회를 빌려 찾아보려 합니다.
약 14년 전 쯤 이야기입니다. 수능을 마치고 광고과 진학을 앞둔 때였습니다. 여타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입학을 앞두고 왠지 모를 설레임과 비장함에 제법 흥분된 상태로 그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치기 어린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단 하나의 고민은 “광고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였어요(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고질적인 고민이네요). 현재는 업계의 선배, 동료들과 함께하니 의견을 공유해나갈 수 있지만, 이런 미래에 대한 감이 전혀 없던 당시에는 정말 막막하기만 했던 것 같네요.그렇게 이상과 현실이 헛도는 생각만으로 끙끙 거리기 만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길로 진학 예정인 학교에 전화를 걸어 전공 교재를 미리 알아냈죠. [광고 꿈틀], [광고 크리에이티브론] 등 고전적인 광고 교재 몇 가지를 소개받았고 곧장 동네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다다른 도서관의 광고/마케팅 서적 코너는 미래의 광고 학도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교재뿐 아니라 그 외에도 흥미로워 보이는 광고 마케팅 관련 서적들이 넘쳐나더군요.백지 상태였던 저에게 국내외 유명 광고인들의 이야기와 광고에 대한 색다른 시각들은 ‘사람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를 일깨워주며, 신선
한 충격을 주었고 그렇게 입학 전까지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광고 독학에 푹 빠져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보냈죠.어느 하루 책을 다 읽고 마지막장을 덮다가 엉뚱한 호기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동네에서 이 광고 책들을 찾아 읽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책들을 읽는다는 건 나와 같은 동네에서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실제 하지도 않는 이 인물이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물론 그래선 안됐지만) 덮으려는 책의 맨 끝장을 다시 활짝 펴 비밀스러운 메모를 하나 남겼습니다. 요상한 호기심에 비롯된 작은 일탈에 심장이 뛰었던 것도 같습니다. 메모를 남기게 된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나는 지금 광고를 시작하는 사람이지만 서울에 가서 훗날 꼭 멋진 광고인이 되고 싶다고.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왠지 특별한 인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선명한 마음을 낡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겼습니다.그리고 그 겨울이 지나 저는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향 인천을 떠나 본격적인 서울 살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새로운 친구, 선배, 교수님 모든 것이 새로웠고 광고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그 사이 군대를 다녀왔고, 광고회사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치여 가며 그날의 메모는 까맣게 잊은 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악 5년 후 어느 날. 정말이지 불쑥 누군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보다가 메모를 발견했다고. 어떤 사람인지, 지금은 어떤 광고인이 되어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어요.어김없이 바쁜 오후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문자를 받은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꼈습니다. 아마 그렇게 묘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평생에 처음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 후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남에 대한 약속이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엔 서로 일정이 어긋나며 흐지부지되어 결국 성사되지는 못 했습니다. 사실 왜 만나지 못했고, 결국엔 연락마저 끊어져 버렸는지 정확히 복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거창한 운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미필적 고의 같은 운명이 더 적당한 표현이겠죠. 저의 치기 어린 마음이 무언가를 남겼기 때문에 ‘발생’한 인연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쓸데없는 무언가라도 자꾸 실행을 해야겠구나’, ‘일상에 미필적고의 같은 인연의 씨앗들을 많이 만들어야겠구나’라는 ‘운명’ 같은 깨달음들이 남았습니다.먼 훗날 이러한 인연들이 제 인생에 새로운 스토리가 되고 감정의 폭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그래도 광고 서적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메모를 보고 연락을 줬던 당시의 그 누군가를 꼭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14년 전 패기만 넘치던 학생이 이제는 ‘야근’에 치이며 이런 에세이를 기고하는 광고인이 되었더라고 꼭 전해주고 싶어요.지난날 문득 바쁜 일상으로 날아든 그 반가웠던 연락처럼 지금 이 <광고계동향>의 제 칼럼 보고 있다면 연락주세요.PS. 도서관은 인천 계양도서관이며, 책은 잭 트라우트의 <포지셔닝> 혹은 오길비의 책으로 기억합니다.
동반입대하면 최전방 간다는데... 진짜더군요. 친구와 동반입대 했다가 강원도 철원에 있는 백골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위 ‘선택’된 사람들만 간다는 최전방 DMZ에서 GOP 근무를 지냈습니다. GOP는 실제 전투 작전에 투입된 것이기 때문에 면회도 편지도 할 수 없이 사회와 단절된 채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쥐구멍에 든 해처럼 군대에 보급해주는 <PAPER> 라는 문화 잡지를 통해 이곳과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던 문명과 오랜만의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이 잡지에는 매 달 광고를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어 더욱 반가웠죠. 정확한 코너 이름은 ‘권진선의 광고낙서’. 아쉽게도 짧은 분량의 칼럼이었으나, 당시 해외 광고수상작들부터 국내외 좋은 크리이에티브 사례들을 소개해줘 무척 유익했습니다.어느새 ‘광고낙서’를 읽는 그 짧은 시간은 힘든 군대 생활의 큰 낙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휴가를 나와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나름대로 정리해 메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필자에게서 실제로 답변을 받게 돼 진심으로 기뻤던 기억이 생생하네요.시간이 흘러 <광고계동향>에 첫 연재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시의 권진선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길 감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권진선님께 감사했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아이디엇을 창업하고 회사 홈페이지에 <지식 IN> 코너를 운영 중입니다. 약 4년째로 접어들었는데요. 예전의 좋은 경험을 바탕 삼아, 예비광고인들 혹은 현업인들의 질문에 성심 성의껏 답변을 달아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수고스러웠을 그때 당신의 메일 답신처럼 저의 글 한 자락이 누군가에게 더 큰 나비효과로 번지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