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지 않음
오리콤 브랜드 저널 기사입력 2022.04.13 04:21 조회 2532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광고 카피를 썼다. 카피라이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구나 아는 슬로건, 카피를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된 캠페인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캠페인이 많았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문화가 있다. 너무나 빈번히 바뀌는 브랜드 정체성.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브랜드 정체성 위에 이런저런 이유로 캠페인을 수시로 바꾸는 문화를 말하고 싶다. 
 
오랜 기간 고민해서 나온 캠페인과 슬로건이 있다. 피티를 통해 브랜드를 만든 이와 합의를 이뤘다. 영상부터 옥외까지 다양한 광고를 통해 좋은 반응과 결과도 얻었다. 하지만 일 년, 이 년이 지나면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내부 인력이 바뀐다. 새로운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현재의 슬로건을 브랜드의 자산이 아닌 전임자의 자산으로 여긴다. 새로운 캠페인을 제안해 달라고 요청하고, 다시 피티가 시작된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실적이 필요하고, 기업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으로 새로운 캠페인을 기획한다.
 
급변하는 비지니스 환경 속에서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기업엔 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고, 광고를 통해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업의 혁신이 브랜드의 본질까지 모두 뒤흔들만한 것인가 고민될 때가 있다. 애초부터 브랜드의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는지, 한 사람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 브랜드의 방향이 몇 년에 한 번 씩, 심지어는 일 년에 한 번씩 바뀌는 것이 과연 브랜드에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캠페인과 슬로건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적어도 2년 이상은 바뀌지 않고 지속된 것들이었다. 참여한 캠페인 중에 5년을 넘게 슬로건과 톤을 바꾸지 않고 이어간 캠페인이 있었다.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사회를 위한 메시지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꾸준히 끌고 간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바꿨고,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브랜드 슬로건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기업 내부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기업의 지향점은 이런 것입니다.’를 한 마디로 전달할 수 있는데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기업의 구성원들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에 합의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합의의 과정도 ‘브랜딩’이다. 사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우리 기업은 이러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합의와 약속이 일정 시간을 두고 체화되고 반영될 때,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확립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를 위해서도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TV광고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매체 환경이 변하고 있는 시대다. 그래서 단편적인 콘텐츠의 다발적 노출이 더 효율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콘텐츠의 순간적인 반응만 보지 말고, 브랜드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도 진지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있는지, 없다면, 그것부터 확립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있다면, 지금의 콘텐츠가 얼마나 그것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TV로 집중되어 있던 매체가 여러 채널로 파편화될수록 모든 콘텐츠를 관통하는 아이덴티티는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순간적인 반응만을 고려하며 매년 캠페인을 바꾸는 에너지를 한 번쯤은 브랜드의 본질을 고민하는데 투입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매체 환경이 다양해지고 급변할수록, 결국 살아남는 브랜드는 아이덴티티가 확실하고, 이를 직원부터 소비자까지 확실히 알고 있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바뀌지 않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위에서, 그 브랜드를 멋지게 빛내 줄 크리에이티브를 해보고 싶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콘텐츠처럼 해주세요. 이슈만 만들면 돼요.”라는 말보다는 “본질부터 함께 고민해볼까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무대에 서는 입장에서 새 옷, 화려한 옷은 언제나 탐난다. 하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사람은 늘 같은 옷을 입을지언정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양희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슬로건 ·  카피 ·  브랜드정체성 ·  캠페인 ·  메세지 ·  브랜딩 ·  브랜드 ·  크리에이티브 · 
이 기사에 대한 의견 ( 총 0개 )
2023년 광고 시장 결산 및 2024년 전망
2023년 연초 광고 시장에 드리웠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21년 20.4%라는 큰 성장 이후 2022년 5.4% 재 성장하며 숨 고르기로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던 광고 시장이었다. 하지만 발표된 다수의 전망들은 2023년 광고 시장의 축소를 내다보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2023년 광고비는 전년 대비 3.1%p 하락으로 전망됐고, 이중 방송 광고비는 17.7% 감소가 예상됐다.
40살이 40살로 보이는 굴욕
글 정규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씨세븐플래닝즈 日 꽃미남 기무라 타쿠야 안타까운 근황? 헤드라인이 던진 미끼를 덜컥 물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일본 대표 꽃미남이었던 배우 겸 가수 기무라 타쿠야(木村 拓哉)가 50대가 되어 아저씨 모습이 됐다는 이야기다. 하아-.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나왔다. ‘이 정도 대스타는 나이를 먹고 아저씨가 된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는구나?’ 이런 마음도  짧게
AI는 거들 뿐
글 채용준 CD|NUTS 2022년 Open AI가 ChatGPT를 공개하면서 이를 광고에 활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광고에 쓰일 스토리를 작성하고, 키비주얼을 만들고 카피도 작성시키는 등 조금씩 스며드는 중입니다. 특히 반복 소모적인 업무를 AI를 통해 대체하려는 시도가 많은 대행사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AI가 광고인들의 일자리를 뺏을 거라는 인식도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또 하나의 카메라가 될 AI, 사진 관점에서 정의하다
생성형 AI를 통한 영상, 이미지 생성은 이제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미드저니(Midjourney), 달리(DALLE) 등 이미 사람들은 많은 생성형 AI 툴을 통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생성형 AI의 등장이 광고 사진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랫동안 광고 사진업에 종사하며 전자 제품, 화장품 등의 광고 사진을 찍어왔고, 최근에는 AI를 접목한 광고 사진 영역에 뛰어들고 있는 스튜디오 준세이(JUNSEI)의 대표 박윤철 포토그래퍼를 인터뷰했다.
성공적인 기업 마케팅 은 브랜드를 지속케 하 는 컨셉에서 나와(3)
  이노레드는 김태원 전 구글코리아 전무(Director)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신임대표는 지난 18년간 구글에 재직하며, 유튜브를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마케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시키는 등 구글코리아의 압도적인 성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도운 업계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김 신임 대표는 이노레드에 합류하여, 사업 전략과 미디어 사업 총괄, 마케팅솔루션 분야 투자 확대, 글로벌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