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2) CUT은 TAKE를 만든다 - 이원재 LG애드 부장
기사입력 2003.02.12 01:27 조회 5187

◆숏(shot) : 영화적 이미지의 정지된 화면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며 생겨나는 것. 
한 화면의 시작부터 움직임이 끝나는 순간까지의 묘사.
◆신(scene) : shot이 모여서 이루어진 하나의 단락.
(화장실에 들어가는 shot, 볼 일을 보는 shot, 밖으로 나오는 shot이 모여 화장실 scene이 된다.)
◆컷(cut) : 찍어 낸 장면을 편집에서 떼어내거나 붙이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
◆테이크(take) : 어떠한 움직임의 대상을 촬영하는 방식이나 길이에 대한 표현.



CUT은 TAKE를 만든다

 

  요즘의 아이들에겐 사진앨범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굳이 나이로 구분하자면 한 서른쯤 넘은 사람들에겐 집집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앨범을 놓고서, 버릴까 말까를 전전긍긍할 것이다. 또한 스무 살 아래쪽에겐 사진첩따위는 잊혀진 단어일 뿐 요새는 그저 폴더라 불리든지 수십 수백장의 CD중 하나의 분류상의 제목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성세대에게 앨범 속의 사진이든 이제 초등학생에게 CD속의 사진이든 본질적 의미는 다를 수 없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take, 그것도 long take이다. 롱테이크는 사실적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사건의 진행시간만큼, 또는 그와 버금가게 긴 시간 동안 표현하여 객관적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숏 컷의 인위적 편집에 익숙한 사람들은 롱테이크를 작위적이자 강제적인 강요라 폄하하며 반대하지만 그와 반대로 롱테이크의 예찬론 자들은 숏 컷의 반복적 편집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연속성을 방해하는 것이라 반발한다.

어릴 적 남의 집에 놀러 가거나, 성장해서 결혼할 연인의 집을 방문하면 고이 보관했던 앨범사진을 볼 기회가 누구에게나 몇 번쯤 있을 것이다. 그 앨범구경을 통해 상대의 이력과 취미와 사회와의 관계를 보고, 가정의 소소한 역사와 가풍과 (의식하기에 따라서는)살림의 형편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백서나 다름없는 고백이기에 웬만한 사이가 아니라면 보여줄 턱이 없는 그 앨범에서 우리는 특별히 다른 사진을 발견하곤 한다. 친구 또는 연인의 아주 오래된 어릴 적 사진을 보라. 그것은 하나의 cut에 불과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shot이자 scene이다.

손에 막대사탕을 쥐고도 울고 있는 사진이라면 그 사진을 찍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를 먹인 과정이 보일 수도 있고 형이나 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면 그 사진의 시간적 배경과 함께 상황의 인지 또한 가능할 것이다. 사진 한 장은 단지 still이지만 그 사진에서 보이는 fact는 얼마든지 롱테이크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still사진에서 long take를 얻기 위해 고민해 왔다.

 

LONG TAKE에서 미장센을 찾는다
 

  하나의 상황을 사실적 동의를 얻기 위해 훨씬 길게 찍어 편집할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함축적 의미를 전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된 cut으로도 보여줄 수도 있다. 여하간에 사실적 동의 내지는 공감대를 표현하기 위해 롱테이크를 구사한다면 그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미장센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하자. 미장센(Mise-en-scene)은 불어로서 장면구성요소라는 뜻이지만 요사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빠삐용에서의 미장센은 스티브 맥퀸이 결국 마지막에 코코넛 뗏목을 만들어 탈출에 성공하는 장면일 수 있겠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라면 더스틴 호프만의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아들의 말 한마디, 아빠, 거기가(새로 시집 간 엄마의 집)싫으면 다시 돌아와도 괜찮아요? 라고 묻는 장면일 수 있겠다. 미장센은 궁극적 의미에서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서도, 개인의 인생역경 속에서도, 스포츠의 긴박한 승부의 갈림길에서도 미장센은 꼭 있다.

광고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TV-CM은 물론이요, 신문 잡지광고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어떤 광고에서는 사진 한 컷일 수도 있고 다른 광고에서는 헤드라인 한 줄 일 수도 있다. 그 미장센을 얻기 위하여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여태 고민하고 있다.

 

인쇄광고에서 찾는 롱테이크와 미장센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만든 광고와 그렇지 못한 광고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호흡 빠른 시대에, 한번 쯤 시선을 두고 천천히 여겨 볼 사진이 담긴 광고가 있는지, 롱테이크를 유도한 사진이 있는지를 찾아보자는 뜻이다. 아울러 미장센도-

캐논 디지털 카메라광고는 단연코 헤드라인이 미장센의 역할을 수행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기억력이 기록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 진리를 적절히 구사한 헤드라인을 뒤로하고 한 컷의 사진이 보인다. 롱테이크이다. 해외여행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여행용 대형 트렁크와 여행지에서 찍었을 법한 사진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디지털 카메라 - 우리는 still사진을 통하여 해외여행 중에 있을 듯한 과정과 여행지의 느낌, 사진을 찍는 과거의 경험 등을 떠올린다. 그것이 구매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보이는 것은 롱테이크이다.

PIPPY의 광고를 보자. 익살스러운 친구들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둘은 어느 정도 개구장이고 또 짓궂은 장난 정도는 너그러이 넘길 줄 아는 친한 사이로 볼 수 있다. 조금은 장난스럽고, 조금은 거칠어도 그런 나이에 걸맞는 옷이라는 등식을 유도한다.

WAVECOM의 신문광고는 무선기술이 갖는 편리함과 토탈 솔루션을 말하고 있다. 시각적 흐름으로 보면 이 광고에서의 미장센은 still일 수도 있고 헤드라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로고가 그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광고에 실린 사진에서는 스토리가 느껴진다. 이글루에서의 에스키모의 순박한 삶의 모습과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은 혜택-그런 것을 웅변하고 있는 사진이다.


  


SK텔레콤
의 기업광고는 롱테이크의 전형이다. 아빠와 아들을 통한 유대감과 가족간의 든든한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기업 이미지에 대한 호감을 유도한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통해 공감하고 나름대로의 기억을 떠올리며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롱테이크만을 이야기 한다면 태평양 설록차광고는 조금 불만스럽다. 당연히 가족끼리 모여서 녹차를 나누는 포근한 이미지가 표현되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많이 약화되었다. 가족의 정겨움을 가로 막는 찻잔과 잎사귀, 그리고 집의 외벽 등이 깨끗함은 주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저녁 한때의 가족간의 단란함은 저하된 감이 없지 않다. 한편으로는 크리에이터가 다큐멘타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 사정을 십분 이해한다.





윈저 위스키
광고를 보자. 보통 맥주는 즐거움을, 와인은 사랑을 테마로 다루는데 반해 윈저는 섹스를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는 성공쪽으로 가는데 왜 섹스를 택했느냐고 묻고 싶지는 않다. 이 광고에서의 롱테이크는 주당들의 상상대로일 것이다. 젊은 여자의 벗은 모습과 젖가슴, 반쯤 벌린 입술, 더 얘기해야 무엇하리 - 은밀한 유혹을 부르는 윈저 광고에서의 미장센은 무엇일까? 즐거운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주창하는 CJ의 기업광고는 TV-CM과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전파광고의 보조인지 수단으로 전락한 작금의 인쇄매체광고는 여러가지를 시사하게 하지만 이 광고는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적은 광고예산으로 최대의시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그런 만큼, TV-CM만큼의 롱테이크가 엿보이는 광고라 하겠다.

소망화장품의 스킨샤워제품, 꽃을 든 남자의 광고는 상황의 묘사가 없이도 롱테이크를 유도하는 광고이다. 카피의 내용으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비누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산한 아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선스러운 목욕탕의 풍경. 깔끔 떠는 여학생의 뾰루퉁한 얼굴과 겸연쩍어하는 아빠의 표정,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



롱테이크는 꼭 필요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이다. 롱테이크는 공감이자 사회적 경험으로 인한 학습의 결과이다. 상대적이기는 하겠지만 그런 공감을 끄집어 낼 필요가 있는 광고에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관여제품보다는 고관여제품에, 이성적 어프로치보다는 감성적인 그것이 필요할 때, 단순한 제품광고 보다는 기업 이미지 제고용 광고에 적합할 것이다.

과거 인쇄매체의 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때, 당연히 광고 면도 적었을 때는 still사진 한 컷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만큼 어필하기도 쉬웠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요구하는 바도 달라지고 대응 또한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이겠지만 지금껏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롱테이크이건 미장센이건 예로부터 동서의 크리에이터들은 소비자의 눈을 잡아두기 위해 아직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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