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을 닮은 광고 쟁이 조익명 대표(블랙퍼스트, 전TBWA 국장)
“아직 동사무소 같은 분위기인데...”
공사 중인 회사 내부를 안내 하면서, 그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는 잘나가던 CD의 명함을 던지고 ‘Breakfast’’’’라는 프로덕션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의 겁 없는 도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많지만, 불철주야 광고에 미쳐 있는 그는 행복하다. 광고 인생 17년 동안 파지 못한 우물이 더 있다며, 끊임없이 전진 하고 있는 조익명 대표의 꿈과 땀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 1. 그의 이유 있는 도전과 열정
자유로운 복장과 수수한 차림새 때문인지. 다이나믹하고, 개성이 강할 것이라는 광고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터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카리스마는 광고라는 리듬을 타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 한참 오픈 준비 중인 ‘Breakfast’’’’ 에 관해 묻자마자 담배부터 찾는 그의 모습에서 꽤나 쉽지 않은 시작이 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는 다른 크리에이터와 성장 과정이 좀 달라요, 아트 디렉터로 시작 했거든요. 제일 보젤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할때, 한불 화장품을 10여년동안 맡았는데, 그때 CF에 대한 관계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월콤에서 레간자’ 시리즈를 담당할때 남아공 감독들과 많은 일을 하면서 해외 시스템에 대해 눈을 뜨게 됐어요. 해외 프로세스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서 한국의 업무 프로세서가 굉장히 잘못 되어 있고, 답답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죠. ”
표준화된 해외 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화 되고 있는 광고시장에 한국의 크리에이티브를 질적 향상을 시키고자 그는 개척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광고계의 시스템은 어떤 구조이며,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감독들은 팔방미인이다. 견적에서부터 모든 것을 감독 자신이 컨트롤 한다. 외국의 경우 대행사 크리에이터들이 감독을 선택하게 되면 감독에게 직접 컨택을 하지 않고, 감독의 담당 프로듀서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다음은 감독 담당 프로듀서와 대행사 프로듀서, 크리에이터와 삼자대면을 하고, 감독에게 이런 콘티가 있는데 CM의 컨셉과 트리트먼트를 먼저 프로듀서가 받아서 대행사에게 보내준다. 그러면, CD들이 감독이 이해를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를 하고 만족을 하게 되면 프로덕션 프로듀서에게 견적을 뽑아 달라고 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프로듀서들은 매우 자세히 디테일 하게 짜야 되며, 합리적인 금액에 대한 좋은 퀄리티를 보장할줄 알아야 되는 것이 프로듀서의 능력이다. 외국은 질(quality)은 곧 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노동의 댓가를 지불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는 대행사가 감독에게 500원을 주고 바로 컨택을 한다. 견적을 컨트롤 하는 사람이 없다. 대행사와 프로덕션 사이에서 합리적인 견적을 낼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500원을 받고 300원짜리 광고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듀서가 있으면 전체적인 합리적인 선에서 조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외국 대행사들이 우리나라 프로덕션을 컨택을 할 때도 문제가 생긴다.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외국 CD들이 프로듀서를 만나고자 하면, 주먹구구식으로 조감독이 프로듀서 임무를 대신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구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낮은 예산에 빨리 해야 되는 일, 비합리적인 일에 우리나라 감독들만 찾게 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
인터뷰 내내 흥분된 어투로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뿌리 내린 제도를 바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잘못되었건 잘 되었건 기존의 관념을 새로 정립 하는 일에 많은 시련과 고난이 따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까?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역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은 듯했다. 하지만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던 나폴레옹의 야망처럼 그에게서 느껴지는 풍만한 자신감과 열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 시급한 것은 시스템 문제예요. 감독 혼자의 팔방미인식 시스템은 질적 향상에 한계를 가져 왔죠. 감독 혼자의 짐을 여러명이 나눠야 합니다. 더 전문화 하고 더 세분화 해야 돼요. 또한 프로듀서 시스템의 도입은 우리나라 광고계 고용 창출 이라는 긍정적 기대 효과를 가져다 줄거예요. 고용창출은 곧 직업의 세분화가 아닙니까? 지금은 팔방미인 보다는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한 시대예요 ”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기득권이 만만치 않아요 ’라고 힘든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안정을 찾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으며, 왜 쉽지 않은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일까?
“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라면, 내가 발 벗고 나서고 싶어요. 나는 광고에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꿔서 좀더 발전을 시켜 후배들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물려 주고 싶어요.”
# 2. 단돈 5만원에 젊음을 걸고...*
정상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지난 세월’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은 인생의 인과응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광고의 광인(狂人), 조익명을 만든 것은 단돈 5만원과 젊음, 그리고 소박함이다.
“ 첫 직장인 기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적성은 안 맞았죠. 8개월 만에 기획 부장과 한바탕하고 사표를 던졌어요. 그 뒤 단돈 5만원만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답니다. 하루 한끼를 먹으면서 연탄불도 없는 친구 자취방에서 칩거(?) 생활을 했었죠.”
‘서울 드림’을 꿈꾸며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청년이 ‘글로벌 드림’을 꿈꾸는 개척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유쾌하게 들렸다.
“ 이력서를 넣으면 대부분 면접에서 떨어졌죠. 오랫동안 취직을 못하고 헤매다가 후배 소개로 조달청에서 사보 만드는 일을 한달동안 하다가, 기회가 되어 대보 기획에 정대길 사장을 만났고, 그때 광고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죠. ”
대보 기획에서 사내 커플로 결혼도 하고 안정을 찾게 될 즈음에 , 진정한 광고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광고주의 요청에 의해 제일보젤에 입사하게 되었고, 높은 PT 승률과 함께 그의 진가는 서서히 발휘 될 수 있었다
# 3. 나만의 광고 코드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관된 광끼의 발산에 있지 않을까? 광고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을 법 한데, 그는 수줍게 ‘NO’’’’라고 답한다. 다만 CM을 CM 같지 않게 만들고 싶다는게 작은 꿈이라고..
“뒤돌아 보면, 제가 만든 광고에는 저만의 스타일이 있나 보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마구 기쁜 것을 싫어해요. 음악도 그렇고 기쁨 안에 슬픔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이중적인 느낌, 이런 것들이 저만의 색깔이 아닌가 생각 하거든요.”
가만히 보면 그의 광고는 일관된 코드가 있다. 그가 말하는 우수(優囚) 적인 느낌이 곳곳에 숨어 있다. 네이트닷컴, 스카이 히치하이크 편이 그가 만든 광고이고, 여기서 묻어 나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슬픔이 있는 이중적인 느낌이다. 그는 서커스 음악을 좋아 한다는 리듬 자체가 맑고 유쾌하지만 가만 듣고 있으면, 해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광고의 모티브를 거기서 얻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숨겨둔 슬픔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는 그것을 잘 끌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독심술사와 같아 보인다. 그것이 그의 광고 매력이다.
# 4. 광고 이데아
광고는 물건을 팔아먹는 도구만이 아니다. 광고는 문화다. 광고가 예술적인 비주얼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적 전달자가 되길 바란다.
광고의 수준이 높아지면, 국민의 문화적 수준 또한 높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한다. 생활의 관점을 다르게 표현하는 위트 있는 광고가 많이 나오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 5. 광고 쟁이 조익명!
‘대~한 민국 ’
2년 전 이맘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붉은 악마가 되어 외쳤을 것이다.
한국 축구의 신화를 만들었던 한일 월드컵은 스포츠 뿐 아니라, 광고의 영역까지도 신화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역시나 조익명이 있었다.
‘ 생방송 같은 CM 은 어떠냐?’
매체 진행에서, SP까지 그의 손끝에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 졌다.
‘이번엔 미국 입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 했고, 광고를 통해 승리의 감동을 더욱 극대화 할 수 있었다.
‘대박’ 광고에 진행자였던 그는 자신의 이름 보다는 같이 고생한 후배들의 이름을 먼저 내세우고 박수를 보냈던 그때가 가장 보람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작업은 해야 되는데 예산이 없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그는 얼마 전 해외 로케로 한국 타이어 소금 사막편을 촬영을 할 때 20년만에 내린 비 때문에 철수를 해야 하는 상황 역시나 힘겹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입만 열면 광고 이야기뿐인 그는 광고로 시작해서 광고로 끝나는 골수 광고쟁이다.
“ 다시 태어나면 광고는 안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적(知的)가치가 인정 되는 곳이라면 다시 광고를 할꺼예요 ”
지금껏 광고에서 겪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소박한 투정의 표현인 것이다. 그는 제대로 광고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광고로 인해 그의 카리스마에는 날이 서고 빛이 나는 것이다.
PT를 준비하는 동안은 많이 힘들지만 완벽하게 하고, 팀원들을 PT 하러 보내고 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그때가 또다시 광고에 몸을 던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 마다 커피 자판기처럼 마케팅 상황 컨셉만 넣으면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을 발명 하고 싶다는 그의 재미난 발상에서 광고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애환이 묻어 나온다.
후배들이 광고 쟁이 이길 바란다. 새로움, 변화,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다. 그 역시 광고쟁이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열고자 지금 다시 출발선에 섰다.
어쩌면 그는 지금 사면초가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꽤나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수백만의 군사를 이끈 나폴레옹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이였을 것이다. 힘든 길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겠노라고.. 불굴의 개척 정신과 광고를 향한 열정으로 시작한 새로운 길 위에 꼭 승리의 깃발을 꽂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인터뷰 및 정리 / 임무성,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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