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채소를 길러먹거나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일은 과거 중장년층의 취미생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층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데
이렇게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는 사람들을
로커보어(Locavore)라 한다. 로커보어 트렌드는
단순한 취미활동을 넘어 환경운동과 연결되며
최근의 힐링 열풍과도 맥을 같이 한다. 로커보어가
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먹을거리의 위기, 로커보어가 출현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3대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음식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음식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음식에 대한 이러한 태도와 행동은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넘어 먹을거리의 생산자, 환경, 지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요즘 먹을거리를 직접 키우거나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선택해 먹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이들 로커보어는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으며, 여러 연령층에 걸쳐 있다. 특히 요즘엔 젊은 층의 활동이 돋보인다. 왜 이렇게 로커보어가 늘고 있는 것일까. 로커보어는 먹을거리 위기의 시대가 만들어낸 라이프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먹을거리는 제철과 지역 맥락에서 생산되고 소비돼야 하며, 그럴 때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먹을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오이, 딸기, 수박, 참외, 깻잎 등 많은 먹을거리가 제철에 관계없이 생산된다. 닭이나 소, 돼지의 경우 자연스러운 성장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농축 사료, 성장호르몬, 항생제 때문에 시장에 내놓는 데 걸리는 기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육계는 병아리로 부화된 지 35일이 채 안 걸린다. 과거에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가정에서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식품이 대부분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공급하는 주체가 가정이 아니라 식품회사로 바뀌었다. 또한 식재료는 인근 지역이 아니라 수천 내지 수만 km 떨어진 곳에서 생산돼 공급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돼 있지 않으므로 생산자가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게 된다. 또 시장에 싼 가격으로 공급돼야 하기에 생산 과정에서 화학제(비료와 농약)가 사용되고, 장거리 수송 때문에 방부제 투입이 필수다. 이처럼 글로벌푸드는 음식으로서 문제가 있다. 식품 안전 문제도 그렇지만, 먹을거리 생산과 수송에 많은 화석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문제다.
공동체를 위한 선택
로커보어는 글로벌푸드나 패스트푸드를 섭취하지 않는 대신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를 먹고자 한다. 로컬푸드는 소비자의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라서 푸드마일리지가 짧다. 소비자가 생산자와 생산 과정을 알 수 있고, 생산자가 소비자를 알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를 배려할 수 있다. 로커보어의 지역 농산물 구매는 지역 농민, 지역 경제, 환경에 이롭게 작용한다. 지역에서 제철에 생산된 먹을거리 슬로푸드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가리킨다. 좋은 음식은 맛도 있고, 제철, 지역에서 생산된 온전한 음식이다. 깨끗한 음식은 그것의 생산 과정에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환경을 지속시키고, 동물복지를 보장한 것이다. 공정한 음식은 위엄 있게 접근 가능하고,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임금이 주어진 음식이다. 로커보어와 도시농부가 늘어나면서 많은 지자체가 시민을 대상으로 상자 텃밭을 분양하거나 농업 기술을 설명하는 안내 책자를 배포하고 있다. 농가와 도시농부들이 참여하는 직거래 마켓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서교동이나 문래동처럼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텃밭을 가꾸며 지역공동체 부활을 꿈꾸는 사례도 있다. 앞으로 먹을거리 위기가 심화될수록 보다 많은 사람이 로커보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상에서 보았듯이 현대의 먹을거리 문제에 대한 로커보어의 대응은 개인적 결과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을거리의 확산에 기여한다. 나아가 지역 경제, 지역 사회, 환경에 기여한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로커보어가 돼 온전한 먹을거리의 공동생산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1,2,3. 도시농부, 슬로푸드 등이 빅 이슈가 되면서 농산품 디자인에도 혁신이 불고 있다. 생태문화를 창조하는 네트워크
파머스파티를 위한 독창적인 디자인은 액션서울에서 진행했다. ⓒ액션서울 actionseoul.com
4. ‘농부로부터’는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토종 농산물은 물론 도시농부를 위한 텃밭 용품도 구입할 수 있다. ⓒ흙살림
쌈지농부 fromfarmers.co.kr
5,6. ‘마르쉐@’는 농부와 요리사,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형 장터로 새로운 마켓 문화를 열어가고 있다. 매달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으며, 장터가 열리는 며칠 동안 몇 천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마르쉐@ marcheat.net
7,8. 농사의 즐거움과 건강한 식생활의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 가상다반의 농작 기구 브랜드 '파머스러브레인'. 편안한 그립감, 세련된
디자인으로 농작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가상다반 farmersloverain.com
9. 지역공동체의 도시텃밭 운동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홍대텃밭다리는 서울 마포 지역의 건물 옥상과 노지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의 모임으로 다양한 행사는 물론 농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홍대텃밭다리 cafe.naver.com/darinongbu/61
직접 길러먹는 기쁨
로커보어는 여러 이유에서 식재료가 되는 작물이나 동물을 직접 키워 먹는다. 그 이유는 우선 직접 키워 먹으면 식품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직접 키운 먹을거리가 신선해 맛도 좋고, 제때 수확해 영양분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영농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다.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다 보면 도시의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소일거리가 되면서 재미 또한 적지 않다. 파종한 씨가 발아돼 크는 과정을 보면 생명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키웠다는 사실에 보람도 갖게 된다. 넷째, 도시 농업이 정서면에서, 특히 자녀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농을 통해 자녀들이 나무나 작물, 풀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 그리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로커보어의 영농 실천은 몇 가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농업, 영농에 대한 이해와 이를 통해 농민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커보어가 영농 활동을 통해 농업이 자연에 의존하며,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분야이며, 농업이 여러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하게 된다. 또 하나는 조리의 복원이다. 인스턴트, 패스트푸드의 소비가 늘어나고 조리의 효용성이 줄어들면서 가정에서 조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직접 재배하거나 생산자와 연결해서 먹을거리 재료를 조달 받으면 조리를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거의 잃어버린 조리 기술을 복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