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Seo Jung Im (Deputy Editor of Article , Monthly Art Critic Maga zine)
일반적으로 ‘예술가’라고 하면 현실적인 번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외로움과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내는 고단한 숙명의 아티스트들. 그리고 그들의 독자적인 작가정신은 오늘날 예술가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최근, 자신의 예술성을 타인의 그것과 절충하고 협의와 소통 과정을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는 작업 경향이 구체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솔로 작가들의 세대에서 듀오아티스트, 프로젝트팀, 콜라보레이션 워크스(Collaboration Works)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컬렉티브(Collective) 세대의 막이오른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활동을 자제하며 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거나,평소에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다 프로젝트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여 작업하며 작가들 간의 아이덴티티를 상호 공유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한 이유로 공통된 ‘생각’과 ‘교감’을 거쳐 탄생되는 하나의 결과물은 여럿의 개성이 녹아들어 한 차원 높은 결과물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고독한 사투를 통해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가에 대한 통상적인 환상을 유쾌하게 깨트려버리기도 한다. 지금부터 ‘나’가 아닌 ‘공동’이라는 일종의 상대적 무명성을 내세우는 컬렉티브 세대에 주목해보자.
듀오아티스트, 둘이라서 좋은 수백 가지 이유
혼자에 익숙하고,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위대한 작가정신이었다. 그러나 외로운 창조의 길목에서 예술적 영감을 교감할 수 있는 정신적 ‘짝’을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들을 풍요롭고 완성도가 높은 예술의 세계로 이끌지도 모른다. 아니, 듀오아티스트들은 이미 그러한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듀오아티스트들 중 오랫동안 둘의 화합을 보여주며 한 몸처럼 불리게 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스스로 ‘살아 있는 조각’이라 주장한 길버트 & 조지(Gilbert & George)이다. 이제는 둘의 이름 조합이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된 그들은 동성 커플로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남성의 정체성에 대한 묘한 비틀기를 시도하며 지금까지 파트너십을 유지해오고 있다. 초기 길버트 & 조지는 미술계에 익살맞은 행동을 하고 다니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살아 있는 조각>이라는 작품에서는 얼굴에 금속성 색채의 물감을 칠한 양복을 입은 두 신사(길버트 & 조지 자신)가 전시장의 테이블 위에 조각처럼 서서, 그 앞의 녹음기에서 나오는 노래와 대사에 맞춰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해 미술전문가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자신의 신체를 조각처럼 제시한 것으로, 고전적인 조각의 고정관념에 맞서며 개념미술이나 미니멀아트와 같은 기존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이었다. 이후에도 그들은 사진이란 매체로 작품을 발표하며 항상 스캔들의 중심에 섰다.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신성모독, 성(sex), 배설물, 십자가, 에이즈 등의 주제들을 작품에 끌어들여 예술적 도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길버트 & 조지는 과학자의기록일지처럼 신체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화면에 담아냈고 빨강, 노랑, 갈색, 흰색 등 원초적인 색채의 대비와 파노라마식 구성으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작품들은 실제 삶 자체를 생물학적 대상으로 격하시켜버리고, 세상
에 만연하는 쾌락주의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것이었다. 이렇듯 삶과 예술의 일치를 주장한 그들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때론 진지한 어투로, 때론 해학적이고 유쾌한 제스처로 작품에 표현하며 이 시대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버트 & 조지처럼, 동성의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작업하는 피에르 & 질(Pierre et Gilles)의 운명은 일본 디자이너 겐조(Kenzo)의 파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피에르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제네바에서 사진을 공부한 사진작
가였고, 질은 회화와 콜라주, 잡지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전공한 페인터였다. 그들은 운명적인 만남 이후 예술적 협력자, 동시에 인생 동지로서 40년 가까이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다. 유명 스타부터 일반인까지 가리지 않고 모델로 삼아, 질이 무대를 세팅하고 피에르가 초상사진을 찍어 인화하면 그 위에 질 특유의 장식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붓터치가 가미된 작업을 더함으로써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생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가수, 서커스와 장터, 흐드러지게 핀 꽃, 요정, 이국적인 풍물, 성자와 순교자, 에로티시즘과 게이문화, 사랑과 죽음, 이교도(異敎徒)적인 암시와 해석, 키치와 팝 등 어울리지 않은 혹은 조합되어서는 안 될 것들을 한 화면에 담아낸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이상적인 인공낙원에 대한 예술적 판타지를 한껏 드러내며, 현실과 환상, 사진과 회화,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고 한정하는 대신 경계를 넘나들면서 유연하게 사고하는 예술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이러한 그들의 사진은 피에르 & 질이라는 두 개체의 삶의 연속성에서 함께해왔던 결과물로서,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 자신들의 삶과 친구들에 대한 사진앨범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듀오’의 예술 형태는 길버트 & 조지, 피에르 & 질과 같이 연인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라이트 형제나 영화계의 워쇼스키 남매처럼, 피를 나눈 형제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러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yBa의 채프먼 형제(Jake & Dinos Chapman)이다. 1962년생 형 디노스와 4살 어린 동생 제이크는 영국 로열 아카데미 출신으로, 졸업과 동시에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가정용 비디오가 보급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포와 쾌락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B급 공포영화의 정서와 미학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렇기에 작품에서는 죽은 자를 따라다니는 불길한 기운의 검은 새, 제멋대로 봉합된 신체, 좀비 군인 등 공포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채프먼 형제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한 고야의 작품에서 공포와 쾌락의 ‘양면성’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고야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에칭 연작 중 <죽은 자에 가해진 위대한 행위>를 실물 크기로 입체화해 논란의 중심에 놓이기도했다. 그 이유는 전쟁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 그림을 절단된 신체 등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성에 대한 불건전성과 더불어 인간의 폭력성을 직설적으로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채프먼 형제는 오늘날 비이상적으로 또는 왜곡되게 전개되는 휴머니즘과, 이를 기저로 한 인간관을 충격요법으로 보여주며, 평온한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은밀한 독소, 공포와 쾌락이 공존하는 인간의 실존적 모순을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채프먼 형제처럼 현대사회의 권력구조와 인간에 대한 비평은 덴마크 듀오 아티스트인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Elmgreen) & 잉거 드락셋(Ingar Dragset)에게서도 나타난다. 두 작가는 1995년부터 함께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감상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조각과 설치 작품을 발표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의 가시물을 만들어 전시하기보다는 매번 주어진 문맥에 따라 이벤트를 생산하고 있다. 즉, 전시라는 방식은 수용하되,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감독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들처럼 일시적으로 설치되고 스토리 구조를 갖는 ‘해프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지어진 밀라노의 아케이드 바닥을 파내 마치 트레일러가 바닥을뚫고 솟아오른 형태로 제시하거나, 나무 박스가 전시장 천장을 뚫고 나오게 하는 등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상황과 직면하게 하는 방법으로 평화로운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그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통적인 예술 장르를 파괴하며 예술의 다양성-공공성, 행위성, 조각, 건축 등-을 작품에 끌어들이고 있다.
프로젝트 팀, 뭉치면 배가 되는 예술적 영감
세 명 이상으로 구성된 컬렉티브 팀들은 대부분 한 개인의 정체성을 부각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익명의 상태로 남아 서로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교류하며 팀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간다. 때문에 이들은 각계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프로젝트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업화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러한 그룹이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플렉스(Superflex)’이다. 1993년 덴마크 코펜하겐 로열 아카데미 출신의 야코브 펭거, 비에른손 로이터 크리스티얀센, 라스무스 닐센 3인으로 결성됐으며, ‘세계화, 경제 권력, 상업지상주의, 환경파괴’ 등 글로벌 정치경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날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여러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 선보여왔다. 그들은 마치 사회 문제연구소처럼 글로벌 시대의 모든 문제를 화두 삼아 대안 사회를 이상으로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활동을 구체화하기 위해 슈퍼가스, 슈퍼채널, 슈퍼뮤직, 슈퍼사우나, 슈퍼카피, 슈퍼시티 등 ‘슈퍼’가 앞에 붙은 일종의 ‘도구’를 만들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회적 이벤트를 만들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상황에 맞춰 협업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램프 ‘슈퍼가스’를 개발하거나, 야외에서 불과 돌, 텐트, 삽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이동식 사우나 ‘슈퍼사우나’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들은 미술가가 단지 미학에 국한된 실험을 하기보다는 직접적인 사회활동의 도구와 이를 사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며, 예술가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단순히 예술그룹의 자선 사업이 아닌,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값싼 시스템을 만들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슈퍼플렉스와 유사하게, 여러 분야와 협력하며 예술의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컬렉티브 집단 ‘팀랩(TeamLab)’은 프로그래머(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머, 유저 인터페이스 엔지니어, DB엔지니어, 네트워크 엔지니어), 로봇엔지니어, 건축가, 웹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CG애니메이터, 편집자 등 정보화 사회에 있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각자 지닌 전문성의 경계를 뛰어넘어, 팀 멤버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백년해도권>이란 작품에서는 전통 일본화에 나타난 고전적인 공간 인식의 개념을 3차원 공간에 영상으로 재현했다. 길이가 20미터를 넘는 이 작품은 서양의 원근법과는 다른 일본 고유의 공간 인식 논리를 토대로, 컴퓨터에 의한 물리 연산으로 해면이 점차 상승하고 파도 섬이 가라앉는 등의 영상을 전시장에 제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 작품 외에도 팀랩은 백화점 매장에 전시된 상품이 걸린 옷걸이를 터치하면 매장 벽에 해당 상품을 착용한 이미지가 상영되는작품을 만들거나, 게임 산업과 미술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며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렇듯 동시대에 컬렉티브 세대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역시 파트타임스위트, 옥인컬렉티브, FF, 워크메이트 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며 미술형식과 개념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