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PORT] 표정훈의 철학으로 딴지걸기 잘 살고 싶다면 놀이를 허하라
INNOCEAN Worldwide 기사입력 2014.07.14 05:39 조회 6604



표정훈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과 저술, 출판평론을 해왔다.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도 강의한다. 저서 <탐미주의자의 책>, 번역서 <젠틀 매드니스> 등 10여 권의 책을 냈다.


잘 살고 싶다면 놀이를 허하라
‘그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니, 나라의 각 고을에서는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 지어 모여들어 서로 따르며 노래하고 논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소설 <삼국지>가 아닌)에 기록된 고구려 사람들의 풍속이다. 요즘 ‘불금’의 홍대 클럽 풍경을 떠올려봄직도 하다.
금요일 밤 클럽 풍경이야 서울, 도쿄, 뉴욕, 런던 등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문화의 유구한 문화유전자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할까 추측케 만드는 기록이다.
고려 시대 축제인 팔관회나 연등회 풍경은 또 어떠했던가. 국가적·종교적 성격을 모두 지닌 행사였지만 남녀노소가 모여 다양한 놀이와 공연을 즐기며 어울렸으니
가히 ‘범(凡)국가적 불금’이었다. 그 축제 기간 고려의 많은 남녀가 ‘썸씽’을 꽃피웠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얼마나 놀고 있을까?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새삼 최근 통계를 보면 OECD 34개국 중 멕시코(2317시간)와 칠레(2102시간) 다음으로 세 번째(2092시간)다. 근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독일과 일본도 각각 1317시간과 1765시간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설렁설렁 일하는 저생산성 근로문화를 집중적으로 알차게 일하는 근로문화로 바꾸자고 말한다.
그러나 근로문화에 앞서 문화 전체가 문제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는데 직원들이 맘 놓고 퇴근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 직장은 얼마나 될까? 회식 자리를 번번이 마다해도 뒷담화 대상이 되지 않는 문화는? 삼삼오오 몰려나가 먹는 점심시간에 ‘나 홀로 집중적으로 알차게 일하기 위해’ 집단 점심을 마다해도 왕따당하지 않는 문화는? 고도의 집중력과 생산성으로 일한 뒤 어린이 집에 맡긴 아이를 찾기 위해 일찍 퇴근하는 직원의 집중력과 생산성을 정확히 인정하는 문화는?
결국 근로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더 큰 문화적 배경이 바뀌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고도 훌쩍 떠날 시간은 좀처럼 내기 어렵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2002 현대카드)를 외치지만 그야말로 월드와이드하고 유비쿼터스한 모바일 네트워크에서 완전히 벗어나 떠날 길은 없으니, 남태평양 해변에 누워 메신저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손길들의 그 부지런함이란.
사람은 일만 해서는 삶을 지속할 수 없으며 놀이만 해서도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일과 놀이가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웰빙(well-being), 즉 잘 살기는 웰워킹(well-working)과 웰플레잉(well-playing), 즉 잘 일하기와 잘 놀기의 조화다. 일에서 놀이로, 놀이에서 일로 즉시 전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스마트 기기 아니던가.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과 놀이를 조금은 무심한 듯 나열하는 아이패드 광고는 아이패드가 일터이자 놀이터라는 유혹 그 자체다. IT 스마트 기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차량이라면 SUV(sport utility vehicle)가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놀이라는 인간 행위의 특징은 무엇일까?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문화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서 이렇게 정리해준다. 첫째, 놀이는 자유다. 놀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행위다.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경마장을 출근하듯 드나들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돈을 거는 사람은 사실은 자발적이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중독이다.
둘째, 놀이는 상상력이다. 놀이는 일상적인 실제 삶을 잠시라도 벗어나 상상력을 발휘하며 이루어진다.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놀이는 기본적으로 허구의 세계지만, 놀이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는 매우 진지하다. 온라인 게임의 대부분은 플레이어에게 고도의 진지함과 함께 공간적·전략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셋째, 놀이는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이다. 놀이하는 사람은 어떤 대상을 이해관계나 목적의식 없이 바라본다. 고스톱을 치더라도 판돈에 눈이 멀어 눈 시뻘게지는 사람은 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돈이라는 대상을 차지하려는 치명적인 관심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놀이는 긴장이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할 때 우리는 술래가 찾기 어려운 곳을 주의 깊게 선택하여 몸을 웅크려 숨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하며 술래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우리는 놀이를 통하여 용기, 끈기, 공정성, 규칙, 그 밖의 많은 것을 체득한다.
동양사상에서는 일과 놀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예악(禮樂) 개념에 단서가 있다. 기업 이사들의 의자와 말단 직원의 의자는 다르다. 직급에 따라 달라지는 건 연봉만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구분(分)하는 것이 곧 예(禮)다. 회식 2차 노래방에서 머리에 넥타이 질끈 동여매고 이사와 말단 직원 할 것 없이 하나로 어울려 논다. 이렇게 하나로 합하는 것이 곧 악(樂)이다. 예와 악, 일과 놀이, 구분하여 나누는 것과 합하여 어울리는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나라가 잘 된다는 것이 동양사상, 특히 유교(儒敎)의 관점이다.



놀이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부수적인 활동, 일과 일 사이의 막간 휴식, 이른바 재충전이 아니다. 놀이는 놀이 그 자체가 목적이며 하나의 완결적이고 자족적인 활동이다. 그 어떤 산업 분야의 아이템이든 그것이 개별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목적인 놀이 요소와 융합되어야 새로운 부가가치 기회가 열린다.이런 의미에서 여가산업, 문화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을 모두 아우르면서 그것들의 본질을 일컬을 수 있는 말을 새로 만들어보면 ‘놀이경제’(play-conomy)가 아닐까 한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사람들이 밤에 더 일하도록 만들었지만 밤에 더 노는 것도 허했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슨의 전구는 ‘놀이경제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모든 것을 놀이의 관점에서 보면 놀이경제가 보인다. 정말로 경제를 살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제발, 노는 것을 허하라!

놀이 ·  노래 ·  춤추기 ·  불금 ·  근로시간 ·  근로문화 ·  문화 ·  자유 ·  상상력 ·  무관심성 ·  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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