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퀴즈쇼, 라이브 퀴즈가 갖는 몰입
밤 9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켠다. ‘잼라이브’로 불리는 모바일 퀴즈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모인 10만여 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퀴즈를 풀면서도 채팅창에 쉴 새 없이 이런 저런 반응들을 쏟아 낸다. 심지어 답을 써 놓기도 하고, 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퀴즈쇼 속에 또 다른 작은 퀴즈쇼들이 채팅창에서도 이어진다. 이 퀴즈쇼가 참가자들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잼라이브는 12문제를 모두 맞힌 이들이 상금을 나눠 갖는 전형적인 퀴즈 서바이벌이지만, 이른바 ‘잼아저씨’로 통하는 김태진 같은 MC가 퀴즈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쏟아 내는 잔망스러운 농담들은 잼라이브를 일종의 쇼로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약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스낵을 먹듯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모바일 퀴즈쇼는 이른바 스낵컬처 2.0 시대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미국의 ‘HQ 트리비아(Trivia)’에서 시작해 화제가 된 이 퀴즈쇼는 중국에 비슷한 퀴즈쇼들이 만들어지면서 2018년 중국 IT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수많은 회사들이 퀴즈쇼를 론칭했고, ‘승자독식 모델’ 같은 것을 더하면서 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흐름은 이제 국내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돈을 벌 수도 있는 데다가 운이 나빠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참여자를 끌어들인다. 또한 퀴즈에 다양한 마케팅을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다는 장점이 스폰서를 유인하고 있어, 양자가 윈윈할 수 있는 콘텐츠로 주목되고 있다.
▲ 스노우의 잼라이브 ? JAM LIVE
무엇보다 자투리 시간에 실시간으로 많은 참여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집중력은 모바일 퀴즈쇼가 스낵컬처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게 만든다. 국내에는 네이버 스노우의 잼라이브, NHN엔터테인먼트의 페이큐, NBT의 더퀴즈라이브 등이 대표적 모바일 퀴즈쇼로 자리하고 있다.
웹툰의 또 다른 진화, 인스타툰
모바일 시대가 가져온 스낵컬처에서 웹툰만큼 그 문화의 특징을 잘 말해 주는 것도 없다. 우리가 책으로 봐 오던 만화는 어느새 웹으로 들어가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하며 보는 웹툰이 됐고, 이것은 다시 모바일 속으로 쏙 들어가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됐다. 그런데 이 모바일 웹툰이 다양한 플랫폼과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진화를 보여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스타툰’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이 웹툰은 플랫폼이 가진 특유의 특징으로 인해 웹툰의 형식과 내용까지 변화시켰다. 사진을 한 장씩 보여 주는 인스타그램의 특성상 여기서 보여 주는 이른바 인스타툰은 한 컷 만화의 특징을 갖는다. 기존 웹툰이 스크롤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면, 인스타툰은 한 컷이 주는 공감에 더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여러 컷이 이어져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인스타툰도 있지만, 한 장씩 끊기고 다음 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 형식은 웹툰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만든다. 웹툰이 ‘흐름’이 만드는 긴장감을 준다면, 인스타툰은 ‘정지’가 주는 심도 있는 공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크종, 키크니, 며느라기, 삼우실(왼쪽부터 시계 방향) 등 인기 있는 인스타툰들. ? 인스타그램 캡처
흥미로운 것은 인스타툰의 한 컷 형식의 특징이 독자들과 ‘소통형 콘텐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팔로어 수가 19만 5천 명이 넘는 키크니(@keykney) 작가의 인스타툰이 대표적이다.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라는 게시물에는 독자들의 요청들이 쇄도한다. 이를테면 “저희 강아지가 매일 예뻐서 우쭈쭈 해 주면 혓바닥을 내밀어요. 혓바닥은 무슨 생각하는지 그려 주세요.” 같은 요청에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강아지를 그려 넣고 “거 내밀면 뭐라도 좀 줘라 줘”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달아 놓는 식이다. 이처럼 인스타툰은 줄거리형 이야기만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대한 소통과 공감을 가능하게 해 주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쪼개 보는 맛, ‘미니 콘텐츠’ 전성시대
모바일이 새로운 주류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고민이 됐던 것은 ‘짧게 즐기는’ 이 스낵컬처에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성 콘텐츠들은 어떻게 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짧은 소비’를 추구하는 스낵컬처는 기존 TV나 영화들의 주류 형식이었던 ‘발단-전개-위기-결말’ 형의 스토리와는 다른 소비 패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짤방’에서는 서론을 뚝 잘라 내고 ‘위기-결말’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영상들이 채워진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척 보면 상황을 알 수 있고, 그 상황이 야기하는 위기를 느끼는 순간 이를 뒤집는 결말이 등장하는 식이다. 4분의 4박자로 움직이던 스토리는 이제 2분의 1박자로 쪼개졌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웹드라마와 웹예능이다. 10분 내외의 분량으로 조각난 드라마는 그 짧은 분량에 맞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호흡도 빨라졌다. 네이버 TV캐스트가 시즌3까지 내놓은 <연애플레이리스트> 같은 웹드라마는 회마다 연애 시 벌어질 수 있는 특정 상황을 이야기로 담는다는 점에서 짧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테면 ‘여자가 키스하고 싶은 남자’나 ‘여자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순간들’ 같은 소주제들을 하나의 콩트나 시트콤처럼 구성하는 식이다.
▲ 스튜디오 룰루랄라에서 제작한 와썹맨 ? Wassup Man
웹예능은 상대적으로 드라마보다 훨씬 자유롭다. 예를 들어 <와썹맨> 같은 웹예능은 god 박준형이 가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가 체험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짧은 분량 속에 담아 각광받고 있다. 김종국과 하하가 출연하는 <빅픽처>나 김종민의 <뇌피셜> 같은 웹예능도 최근 주목받는 것들이다.
상대적으로 짧게 쪼개 만들거나 보여 주기가 쉽지 않은 영화 같은 장르도 최근에는 5분에서 10분 내외로 쪼개 보여 주는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스낵컬처 2.0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가 서비스를 시작한 이른바 ‘구간별 시청 서비스’가 그것이다. ‘일단 10분 플레이’ 같은 기능이 더해져 무료로 영화의 도입부를 보고 이후의 분량들을 5~10분 분량으로 따로 구매해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모바일의 ‘짧게 즐기는’ 스낵컬처 문화는 기존 콘텐츠들이었던 만화, 드라마, 예능, 영화까지 이 새로운 틀에 맞는 형식으로 바꿔 내고 있다. 그리고 그 형식의 변화는 문화 소비의 변화이면서 내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대중문화를 통해 시대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숨은 마흔 찾기』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