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이 콘텐츠가 되는 유튜브 세계엔 다종다양한 덕후들이 존재합니다. 전문가 이상의 해박한 지식과 뜨거운 열정을 겸비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사실 전문가가 따로 있나요. 박사 학위를 받아야만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죠. 그런 점에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별종 취급받으며 폄하됐던 ‘덕후의 세계’가 존중받게 된 건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덕후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종 인류는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그 계통의 조상이 있다는 얘기죠. 어찌나 끽연을 즐겼던지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연경』이란 책을 펴내고야 말았던 조선 시대의 문인 이옥, 꽃에 미쳐 자신이 수집한 꽃들로 화원까지 운영했던 ‘꽃보다 남자’ 유박, 벼루에 미쳐 자신의 호를 아예 석치(石痴)라고 지었던 정철조가 있는가 하면 8폭 병풍 그림에 물고기 수십 종을 줄창 그려댄 화가 장한종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덕후입니다.
덕질의 순도로 봤을 때 어쩌면 지금의 덕후들보다 그들이 한 수 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런 조상의 얼, 아니 덕질을 이어받은 이 땅의 덕후들은 이제 취미를 넘어 소비의 영역에서도 유전자의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초급 덕질이든 심화 덕질이든 혼자 놀기를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그들을 우리는 ‘팬슈머(Fan + Consumer)’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단순히 특정 브랜드나 콘텐츠를 좋아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기획되고 제작되며 유통되는 과정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심지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투자까지 할 정도의 경지에 올랐죠. 팬슈머들의 요청으로 단종됐던 제품들이 부활하거나, 팬슈머들이 붙여준 별명을 브랜드명에 적용하는 사례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팬슈머의 활동이 ‘팬심’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과거, 기업이 소비자들의 의견을 ‘한번 들어 보고 수렴하는’ 양태와는 사뭇 다릅니다. 팬심은 커뮤니티를 형성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팬심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브랜드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기업은 그 시너지를 위해 팬슈머와 연대할 수밖에요.
팬슈머와 같은, 행동하는 참여형 소비자의 등장을 일찌감치 예견한 이가 있었습니다. 이젠 ‘탑골 고전’에 속하는 『제3의 물결』을 쓴 앨빈 토플러죠. 그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프로슈머(Prosumer)가 등장할 것”이라며 생산에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가 미래 소비자의 면모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 즉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와 같은 현상은 민주적 시장 질서가 강화되고 연대의식이 강한 시민 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트렌드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기업과 소비자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되고 있습니다. 제일매거진 7월호에서는 참여를 통해 브랜드와 팬슈머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현상을 ‘컨슈머지(Consumer + Synergy)’라고 명명하면서, 팬슈머가 만들고 있는 경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