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리고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광고에 다양성과 포용성을 녹여내다
글 김대영 전무 | 펜타클 캠페인 부문 총괄(ECD)
큼직한 창으로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안. 변호사 우영우는 방 앞에 걸린 이름표를 떼어냅니다. 누구에게는 선망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자폐 변호사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습니다. 우영우는 자폐증 환자가 내디뎌야 하는 현실의 벽과 마주하며 그렇게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변호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가져도 그럴진대, 장애를 가진 수많은 이들이 어떤 좌절과 매일 만나고 있을까? 비록 드라마의 한 장면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플 TV+ 오리지널 드라마 ‘SEE’에서는 치명적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이 죽고, 살아남은 자와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까지도 모두 맹인으로 살아가는 미래가 그려집니다. 미래에서는 시력을 가진 이들을 마녀라 부르고, 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맹인은 정상, 시력을 가진 소수는 비정상인 셈이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다수와 소수의 차이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수가 정상, 소수는 비정상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나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합니다. 때론 차별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다수 집단은 소수 집단이 갖는 어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펜타클이 겨우 아이스크림 광고 하나에 의미를 담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가치 소비’에 앞장서는 유통업계 큰손, MZ세대
다행인 것은 최근 마케팅 시장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에 공감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MZ라 불리는 젊은 세대의 소비 패턴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가치 소비’인데요. 기업의 작은 선행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취지에 공감을 할 때면 돈쭐(돈+혼쭐·구매를 통해 기업을 응원하는 것)로 화답을 합니다. 물론 이 개념이 MZ 세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선한 기업은 항상 사랑 받아 왔으니까요. 이전에 X · Y세대 역시 착한 기업에는 응원을, 그렇지 못한 기업은 불매로 혼쭐을 내 왔었죠.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기업이 미디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됐고 그만큼 정보의 주도권도 소비자에게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MZ 세대는 그 정점에서 소비자가 가진 주도권을 백분 활용하는 세대이고요.
기업 홍보팀이 광고비를 무기 삼아 기사를 올리고 내리던 것이 당연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쁜 일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습니다. 갑질로 홍역을 치른 어느 기업이 나쁜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다른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하려 해도 소비자들은 귀신같이 알아내고 공유하는 시대니까요. 반대로 굳이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할 마음이 없는 기업의 선행까지 찾아내 돈쭐을 내야 속 시원해하기도 하죠. MZ세대에게 소비란 가치를 증명하는 일종의 표현 수단으로 발전했습니다.
30년 넘은 국민 CM송, 정말 모든 국민이 들어봤을까?
제과나 빙과류는 구매에 있어 고객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저관여 상품입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강렬한 광고가 필수이죠. 이전 빙그레 광고에서 모델로 빙그레우스나 펭수, 손흥민이 등장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이고요. 그렇다고 빙그레가 늘 재미만 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매년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을 돕는 캠페인을 실천해오고 있으니까요.
해태 아이스크림은 지난해 빙그레의 가족이 됐습니다. 대표 상품인 부라보콘은 판매량만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명실공히 국민 아이스크림이기도 하죠.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데에는 중독성 있는 CM송의 역할이 컸습니다. “12시에 만나요~”로 시작하는 부라보송은 국내 광고 역사에 길이 남은 성공작이기도 합니다. 1976년 당시 인기 배우 정윤희와 신일룡이 출연한 광고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30년 넘게 쓰일 만큼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따라 불렀으니까요.
하지만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듯 젊은 세대 대부분이 부라보콘 CM송을 알지 못했습니다. 빙그레는 이를 다시 한번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펜타클은 젊은 세대에게 부라보콘을 다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ONLY 캠페인이라는 것과 미디어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점도 고려하면서요. 아쉽게도 대중들 기억에 남을 수 있을 만큼 바이럴을 하려면 적어도 수십억이 필요하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저희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고민했습니다. 미디어 물량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CM송을 알릴 수 있을까? 반복적으로 세뇌시킬 수 없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가수는 등장하지만 노래하지 않는 반전
펜타클은 소비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던 광고 데이터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의외성, 공감, 극과장, 반전, 패러디, 공익성 등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요소였습니다. 이중 저희 판단에 크리에이티브로 충격을 줄 방법은 ‘의외성’이라는 결론을 내고 아이디어를 모았습니다.
몇 날 며칠 고민이 계속되던 날, 팀원 한 명이 하나의 영상을 들고 왔습니다. 그즈음 언론을 통해 반향을 일으킨 영상이었고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영상, 바로 배우 윤여정 님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어 장면이었어요. 대배우의 사려 깊은 배려에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진 영상이었습니다. 크게 떠들어서 존재를 드러내는 시대에, 말 없이도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습니다.
그 영상은 새로운 질문을 던질 기회를 주었습니다. “부라보콘 CM송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CM송이라면 정말 모든 국민들이 한 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궁금증으로 시작된 질문이 구체화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CM송’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 에이핑크 정은지, 이영현, 이적이 등장하지만 노래하지 않는 ‘의외성’과 CM송을 목소리 대신 수어로 전하는 ‘공익성’을 더해 캠페인 아이디어를 완성했습니다.
사실 제과나 빙과류 같은 저관여 상품의 광고가 공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심플하고 재미있게 광고를 만드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기획 회의를 하면서 팀원 중 일부는 회의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어느 시대에서나 통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요즘 세대라 일컫는 MZ 세대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고요.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낸 ‘조용한 부라보송’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한 빙그레 측에서는 ‘사랑의 달팽이’ 후원과 함께 사랑의 달팽이 로고가 들어있는 부라보콘 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작하는 빠른 의사 결정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모델 섭외에서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더 빛을 발했습니다. 모델 세 분은 기존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고, 심지어 저희의 기획 의도에 공감하면서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촬영 당일에도 수어를 완벽히 소화해 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이번 캠페인을 함께 준비한 ‘사랑의 달팽이’ 관계자분들 역시 아침 일찍 촬영장에 나와 수어 촬영에 기꺼이 도움 주시기도 했고요. 많은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결과를 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라보콘 캠페인은 CM송이 생소할 수 있는 MZ 세대에게 캠페인 노출을 목표로, 유튜브 채널을 활용한 영상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캠페인 영상(6/7~6/30)은 누적 조회 수 약 410만 회를 기록하고, 평균 광고 클릭률(CTR)과 조회수(VTR)가 각각 0.13%, 15.2%로 나타났고, 목표 대비(KPI) CTR은 0.04% 초과 달성하는 성과까지 거뒀습니다.
한 조사 기관에 의뢰한 부라보콘의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는 광고 시청 전 67.7%에서 80.3%로 상승, 20대에서 선호도는 전체 평균을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매 욕구도는 자녀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줄 가능성이 높은 전업주부에서 91.7%로 동종 업계 평균보다 30% 이상 높았습니다.
댓글 반응도 ‘수어로 노래하는 CM송이라니, 너무 신선하고 좋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CM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가수 조합이라서 본 건데 수어가 나올 줄 몰랐다. 순간 울컥했다’, ‘이런 좋은 취지의 광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등의 긍정적인 댓글이 무려 500건 이상 달렸습니다. 유튜브 광고에 댓글을 다는 일은 정말 감동하지 않고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거든요. 댓글을 남기려면 봤던 광고를 다시 검색해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동반되는 일이니까요.
공익적 성격의 광고임에도 부라보콘을 사 먹겠다는 수많은 소비자의 화답과 함께, 한 광고조사에서 구매를 자극하는 CF부문 BEST에 포함될 정도로 광고의 선한 영향력이 매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여름이 오면 가장 조용한 CM송 캠페인이 진짜 부라보콘의 판매에 긍정적 영향을 주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