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시민들 앞으로 빛이 들어오고, 그들의 꿈과 희망이 함께 들어오는 광장. 우리는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값지게 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의 고향 서울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세종로의 비밀
600년 전부터 세종로는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상징 거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의정부와 예조가 있던 이 곳을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이 곳은 애초부터 백성, 왕, 신하가 함께 어울리는 광장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광화문광장은 점차 ‘사람’이 아닌 ‘차’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 후 오랜 역사를 거치며 험난했던 상황 속에도 2002년 월드컵 응원의 함성이 이 곳에서 시작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행사도 이 곳에서 열렸다. 이제 시민 품으로 돌아온 세종로 ‘광화문광장’은 단순히 광장 하나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 600년 역사의 자부심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 행사는 꼭 우리가 한다’는 일념으로 이도훈 팀장을 비롯한 우리 프로모션 3팀은 이 프로젝트에 도전했고, 약 1개월 동안의 이를 악물게 한 PT준비를 통해 당당히 입찰경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6개월의 기획 및 실행을 거쳐, 2009년 8월 1일, 시민들에게 광화문광장을 성공리에 열어냈다.
“언제부턴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광화문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광화문에서부터 시청 앞, 그리고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길에 담긴 역사를 알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민족혼이 우리의 상징 축으로 이끌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거리를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고, 커다란 불꽃으로 뒤엎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사랑하게 된 이 거리를 본래의 의미대로 되살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 의도했던 대로 국가를 상징하는 큰 길인 동시엔 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광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민족의 자부심을 되찾아야 한다.” – 유길상 저, <세종로의 비밀>중에서 –
‘광화문광장’ 대시민 커뮤니케이션
우리가 준공식을 준비하며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광화문광장’의 포지셔닝이었다. 서울에는 ‘서울광장’도 있고, ‘청계광장’도 있다. 이들과 차별되게 광화문광장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광화문광장 준공기념행사’ 하나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광화문광장에 대한 대시민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병행하였다.
광고주와의 오랜 회의를 통해 광화문 광장에 대한 보도 기사의 방향을 설정하고, 광화문광장은 ‘역사와 문화의 광장’이라는 키워드를 뽑아 냈다. 특히 정치적 상황 악화로 5월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이 무산되면서, 광화문광장 준공행사팀에도 위기의식이 생겼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의 광장’으로 대시민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한 결과 행사 당인 시민들에게 환영받으며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새빛들이
2009년 2월, 제일기획의 회의실. 8월에 있을 광화문광장 준공기념행사 PT준비로 한 달여 간 보낸 그 회의실에서였다.
“컨셉트까진 됐는데, 행사 제목이 왜 이렇게 안 나오지요? 내일까지 개인당 10개씩 만들어 오세요!” 그렇게 몇 번을 한 끝에 나온 제목, 바로 ‘광화문광장 새빛들이’다. 많은 시민앞에서 광화문광장에 처음으로 그 빛이 들어오는 날, 서울의 꿈이 드디어 빛으로 펼쳐진다. 캬~ 멋지다. 집을 사면 ‘집들이’를 하듯, 광장이 만들어졌으니 광장들이를 하는 것이다.
광화문(光化門)의 광화가 단순히 빛으로 만들어진 문이라는 의미보다, 임금의 덕, 득 빛이 세상에 퍼져 나간다는 의미가 있음에 착안하여, ‘그 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내고, 그 희망이 광장에 들어오는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취지였다.
손도장으로 만든 태극기
광화문광장을 여는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에 날릴 태극기는 시민들의 손도장으로 만들어졌다. 행사 일주일 전부터 서울광장에 가로 20m 세로 15m의 태극기 통천에 시민들의 손도장 찍기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손에 아크릴 물감을 묻혀 태극문양과 건곤감리의 4괘를 만들었다.
이 태극기는 시민참여와 행사 컨셉트를 표현하는 도구로 기획되었다. 시민들이 처음으로 광장에 ‘발자국’을 내딛는 날임에 착안해 ‘발도장’으로 태극기를 만들자는 최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으나, 태극기를 발로 그릴 수는 없다는 의견에 따라, 최종적으로 ‘손도장’으로 결정되었다.
처음 태극기에 손도장이 찍히던 날이 기억 난다. 7월 땡볕이 내리쬐는 토요일 오전, 서울광장이었다. 광고주인 서울시 담당자는 손도장 태극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참여가 끊인 적이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아크릴 물감의 감촉이 좋고, 흰 천에 자신의 손바닥이 찍는 것이 재미있어서 태극기 주위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비가 걷히고
“거기 공군 기상대죠? 오늘 서울 세종로에 오후랑 저녁에 비 계속 올까요? 저 광화문광장 개막행사 준비하고 있는…”
“아~ 네 광화문광장 행사팀이시군요. 지금 오는 것은 급성 폭우고, 오후 4시와 6시경에 한 번씩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행사 잘하세요.”
행사 두 달 전부터 연락해온 공군기상대와 통화를 끊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야외에서 열리는 공식행사인데, 비가 오면 낭패다. 그래서 행사 기획단계부터, 우천 대책이야기는 약방의 감초처럼 우리를 괴롭혔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확도가 높다는 공군기상대의 예보를 행사 두 달 전부터 모니터링 했다.
공군기상대의 일주일 전 예보를 체크했다가 그 다음주에 맞춰 보았더니, 90% 이상의 확률로 정확했다. 8월 1일 일주일 전인 7월 25일에 체크했을 때에는 ‘맑음’이어서, 예정했던 날짜에 행사를 감행했다. 그런데, 3일 전부터 공군기상대 예보에 8월 1일 ‘흐릴 예정’ ‘강수 확률30%’ ‘국지성 폭우 예정’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그러더니 8월 1일 오전 11시경 세종로에는 청계전이 범람할 정도의 급성 폭우가 쏟아졌다. 쏴아~ 쏴아~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전날부터 대중매체에서 광화문광장 개장 소식을 보고 삼삼오오 구경 온 전국의 국민들로 행사 시작 10시간 전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이순신 장군 동상 분수 앞 등 광화문광장 일대에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여 광화문광장은 포화상태였다. 그나마 한 차례 거세게 쏟아진 폭우로 그 인파가 적당히 줄어서 안전하게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었다.
테이프 커팅은 이제 그만
흔히 준공식이라고 하면 주요인사들이 일렬로 도열해 긴 테이프를 가위로 자르는 커팅식이 연상될 것이다. 기존 이벤트에서 많이 하는 방식인데, 이 테이프 커팅을 대체할 만한 컨셉트와 일관된 퍼포먼스를 고안해냈다. 이벤트는 단발에 끝나는 행사지만, 그 안에 수많은 장치를 통해 의미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참석한 사람들엑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행위이다. 따라서 준공행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퍼포먼스인 광장을 여는 것에 힘을 안 실을 수 없었다.
행사제품이 ‘새빛들이’인 만큼, 광장에 빛을 들여오는 과정이 보여져야 했다. 하지만 빛은 무형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서울의 대표 시민’을 ‘빛’으로 의미부여 했다. ‘서울의 빛’을 상징하는 가치를 역사 문화 도시로 선정하고, 그 가치를 대표하는 대표자를 선정하였다.
광복회 고문 윤경빈 씨, 광화문광장 그림전에서 수상상 이수현 어린이, 이탈리아 출신 주한 외국인 크리스티나 씨, 서울시 2009 장애극복상분야 대상의 안영회 교수, 농구선수 이상민씨와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희망의 빛을 들고 입장함으로써 행사는 시작되었다.
삼성무용단의 주제퍼포먼스 무용이 끝난 후, 서울의 빛 상징인물 여섯 명이 희망의 빛을 들고 시원(始原)을 상징하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진 무대에 올랐다. 희망의 빛을 천상열차분야지도(거치대)에 안치하자, 영상에서는 희망의 빛이 모여, 대형 LED에 태극문을 만들고 그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광화문광장에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을 받은 이순신 장군 동상 분수(12.23분수)에 불이 켜지면서 물줄기가 분사되고, 시민들의 손도장으로 만들어진 태극기가 코리아 판타지 음악에 맞춰 광화문 하늘에 날아오르면 광화문을 개장하는 대장관을 연출했다. 이번 행사는 기존의 테이프 커팅이 아니라, 물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는 독창적인 스트리텔링형 준공행사로 각계에 많은 칭찬을 받았다.
패티김의 프로의식
축하공연은 시민합창단과 패티김이 함께하는 ‘시민 대합창’이었다. ‘서울’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부른 패티김 씨를 섭외했고, 의미있는 행사여서 기분 좋게 수락하였다. 놀랐던 것은 패티김 씨가 합창 연습과 리허슬 등에 모두 참가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돌 가수나 패티김처럼 대형급 가수들은 리허설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는 서울시 어머니 합창단, 아버지 합창단과 소년소녀합창단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연습에 참가해, 함께 하는 열정을 보였다. 하얗게 백발이 된 머리를 숏커트로 치고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진정한 프로는 그 뒷모습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문이 열리고, 빛으로 물들다.
8월 1일 광화문광장.
“문 열어, 태극기 날려! 좋아” 큐사인과 함께 떠오른 손도장 태극기가 광화문 광장 위로 떠오르던 그 순간. 지난 6개월 동안의 준비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그랬다. 이 맛에 이벤트 한다고. 장관이었다. 한국식 문기둥 사이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 12.23분수대의 점등식 그리고 300여명의 시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서울의 노래. 광화문광장은 8월의 더위만큼이나 시민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패티김 씨의 카리스마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났고, 그를 보는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서울의 찬가’를 함께 불렀다. 연습을 많이 한 만큼 합창단들과의 호흡도 일품이었다. 합창 마지막 부분에는 2002년 월드컵 추억을 떠올리며 서울 응원 한마당을 펼쳐 더욱 신명나는 준공식으로 마무리 했다.
‘서울의 찬가’, 서울이라는 브랜드
파리의 샹젤리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처럼 서울에는 서울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광장이 열렸다.서울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값지게 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의 터전, 나의 고향 서울을 한 번 더 사랑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값진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만다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뜨거운 자부심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좋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삽렵니다.”








